
포도나무 한 그루가 땅에 뿌리를 내리는 순간, 세상에는 보이지 않는 거래가 성립되었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이 "온전하고 의롭다"고 증언한 사람, 대홍수 이후 새로운 인류의 씨앗으로 선택된 노아가 포도나무를 심고 있었습니다. 그 땅에는 아직 씻기지 않은 물의 냄새가 남아 있었고, 새 시작의 설렘이 흙 속에 가득했습니다. 그때 악마가 다가와 조용히 물었습니다. "무엇을 심고 있소?" 노아는 달고 새콤한 과일이며, 발효시키면 사람을 즐겁게 하는 술이 된다고 성실하게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악마의 눈이 빛났습니다. "그렇게 좋은 것이라면 나도 거들고 싶소."
악마는 양과 사자와 돼지와 원숭이를 끌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차례로 죽여 그 피를 땅에 뿌렸습니다. 포도나무의 뿌리는 그 피를 빨아들였고, 덩굴은 무성히 자랐고, 포도송이는 탐스럽게 익었습니다. 그 열매로 빚은 술 속에는, 보이지 않는 네 마리의 짐승이 고요히 잠들어 있었습니다.
탈무드는 이 기묘한 우화를 통해 술에 취해가는 인간의 네 단계를 그립니다. 처음에는 양이 됩니다. 술이 한두 잔 들어가면 사람은 부드러워집니다. 평소에 말이 없던 사람이 입을 열고, 낯선 이에게 손을 내밀고, 굳어 있던 어깨가 풀립니다. 이 단계의 술자리는 아름답습니다. 사람들이 서로를 '형님'이라 부르고, 오랜 원한도 잠시 녹아내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탈무드가 양을 첫 번째 짐승으로 선택한 것은 정확합니다. 양은 순하고 무해하며, 목자를 따르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잔이 거듭될수록 사자가 깨어납니다. 목소리가 높아지고, 주먹이 테이블을 치며, 평소에 꾹 눌러 두었던 분노가 솟아오릅니다. 1990년대 한국의 어느 회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부장과 과장이 함께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처음 두 시간은 화기애애했습니다. 그러나 소주 몇 병이 비워지자, 부장은 갑자기 수년 전 진급 심사에서 자신이 받은 불이익을 꺼냈습니다. 목소리는 점점 커졌고, 결국 그 자리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파국으로 끝났습니다. 이튿날 아침, 부장은 기억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상처는 기억합니다. 사자는 제 발톱이 얼마나 날카로운지 모릅니다.
돼지의 단계는 수치를 잃는 단계입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것 중 하나는 수치심입니다.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가 눈이 열렸을 때 처음으로 느낀 것이 바로 부끄러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술이 깊어지면 그 감각이 마비됩니다. 길바닥에 쓰러지고, 토하고, 입에 담기 어려운 말을 내뱉으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합니다. 마을 어귀의 술집에서 밤마다 이 장면이 반복됩니다. 낮에는 점잖은 신사였던 사람이 밤에는 돼지처럼 굴다가, 아침이면 기억을 잃은 채 다시 양복을 입습니다.
마지막은 원숭입니다. 원숭이는 지능이 있지만 판단력이 없습니다. 따라하고, 떠들고, 제어되지 않는 에너지를 사방에 흩뿌립니다. 몹시 취한 사람을 보십시오. 그는 자기가 노래를 잘한다고 믿으며 마이크를 놓지 않습니다. 자기가 철학자라도 된 양 아무도 묻지 않은 인생론을 강의합니다. 자기가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며 울다가, 갑자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처럼 웃습니다. 원숭이는 중심이 없습니다. 방향이 없습니다. 오직 소란만 있을 뿐입니다.
이 우화가 더욱 서늘한 것은 그 주인공이 노아이기 때문입니다. 노아는 타락한 세대 속에서 홀로 의로운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방주를 완성하는 데 걸린 시간은 무려 수십 년이었습니다. 그 긴 세월 동안 주변의 조롱과 비웃음을 견디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었습니다. 그런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 채 쓰러졌습니다. 그 장면을 목격한 함은 아버지의 수치를 조롱했고, 그 일은 이후 세대에 깊은 균열을 남겼습니다. 성경 창세기 9장은 그 민망한 장면을 숨기지 않고 기록합니다. 탈무드는 이 사건에서 인간의 보편적 취약성을 읽어냅니다. 의인조차 이럴진대, 보통 사람은 오죽하겠습니까?
어느 나라의 속담에 "술이 들어가면 비밀이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입이 가벼워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평소에 우리가 수고롭게 쌓아 올린 자아의 건축물, 즉 예의와 자제와 배려와 품위로 이루어진 그 구조물이, 알코올 앞에서 하나씩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비밀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감추어진 짐승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언제나 네 마리의 짐승이 살고 있습니다.
양의 온순함도, 사자의 분노도, 돼지의 방종도, 원숭이의 무질서도, 모두 우리 내면의 어딘가에 잠들어 있습니다. 술은 그것들을 만든 것이 아니라, 다만 깨운 것입니다. 그리고 그 짐승들을 깨우는 것이 반드시 술일 필요도 없습니다. 권력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하고, 분노가, 욕망이, 두려움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도 합니다.
탈무드의 지혜는 결국 이 물음을 우리에게 던집니다. 당신 안에 잠든 짐승들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것들이 깨어나기 전에, 당신은 스스로를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고 있는가? 포도나무는 오늘도 자라고 있습니다. 악마의 거름을 먹고, 달콤한 열매를 맺으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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