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날 오후, 한 중년 사업가가 사무실 창가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습니다. 보도 위의 작은 화단 한 귀퉁이에서 개미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무심코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녀석들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저렇게 쉬지 않고 움직이는 걸까?
나중에 그는 오래된 랍비 문헌을 읽다가 그 질문의 답을 만났습니다. 랍비들은 잠언의 "오, 게으른 자여, 개미에게 가서 개미의 방법을 연구하고 배우라"는 구절을 해석하면서 뜻밖의 주석을 달았습니다. 그들은 개미를 부지런함의 미덕으로 칭찬하는 대신, '낭비된 일'의 상징으로 읽었습니다.
그 이유가 놀라웠습니다. 개미가 한 해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낱알은 겨우 두 알이면 족합니다. 그런데도 개미는 그보다 훨씬 많은 것을 모으기 위해 평생을 쉬지 않고 움직입니다. 필요의 한계를 넘어선 노동, 그것이 랍비들의 눈에는 '게으름'보다도 더 경계해야 할 어리석음이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성공 공식은 단순합니다. 더 많이 일하면 더 많이 얻습니다. 야근은 헌신의 증거로, 바쁨은 능력의 훈장으로 통합니다. 스마트폰 화면에는 '오늘 몇 시간 일했는가'를 추적하는 앱들이 즐비합니다. 그러나 유대 전통은 이 공식에 날카로운 이의를 제기합니다.
히브리어로 '비툴 제만(biṭul z'man)'은 '시간의 낭비', 더 정확히는 '공부 시간의 낭비'를 뜻합니다. 그런데 유대 전통이 말하는 '공부'는 단순히 책상 앞에 앉아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통찰력으로 실재를 인지하고, 타인에 대한 동정을 키우고, 자기 자신의 내면을 통해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을 연마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더 온전한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입니다.
이 관점에서 보면, 필요 이상의 노동은 단순히 피로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마땅히 써야 할 시간을 도둑맞는 일입니다. 일이 삶을 가득 채울 때, 우리는 생각할 여백을 잃습니다. 생각의 여백을 잃으면 우리는 점점 더 얕아집니다. 얕아진 사람은 더 열심히 일하면서도 정작 왜 일하는지를 잊어버립니다.
한 지인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삼십대 초반에 작은 제조업체를 시작해 십 년 만에 직원 이백 명의 중견 기업을 일궜습니다. 누가 봐도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는 아내의 생일을 다섯 해 연속 잊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내가 조용히 떠난 뒤에야 그는 비로소 물었습니다. 나는 무엇을 위해 그 모든 시간을 썼는가? 사무실에 쌓인 계약서들은 그 질문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랍비 메이르는 진실로 부자인 사람의 조건을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자신에게도, 다른 사람에게도 결핍을 야기하지 않으며, 책임을 지고 살아가며, 시간낭비를 피하고, 진실로 필요한 것 이외에는 자연으로부터 생계를 끌어내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것을 '내면의 평화'라고 불렀습니다. 이 정의는 통장 잔액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질문입니다. 당신이 가진 것이 당신을 소유하고 있는가, 아니면 당신이 그것을 소유하고 있는가?
워렌 버핏은 수십 년째 같은 동네의 소박한 집에서 살고, 같은 햄버거 가게를 즐겨 찾습니다. 그가 지출을 아끼지 않는 항목은 단 하나입니다. 책입니다. 그는 하루의 상당 시간을 독서와 사색에 씁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하루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을 읽는다. 그것이 내가 나를 더 나은 투자자로 만드는 방식이다." 그에게 독서는 여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더 깊은 인간이 되기 위한 훈련이었고, 그 깊이가 그의 판단력을 만들었습니다.
반면 화려한 소비로 부를 과시하다 몇 해 만에 파산한 이들의 이야기는 드물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공통적인 것이 있습니다. 처음 왜 부자가 되고 싶었는지를 잊어버렸다는 점입니다. 목적을 잃은 부는 방향을 잃은 배와 같습니다. 빠르게 달리지만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랍비 메이르의 통찰이 오늘날에도 유효한 이유가 있습니다. 부의 축적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는 점 때문입니다. 그는 '가난이 미덕'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강조한 것은 '균형'이었습니다.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되, 타인의 삶의 질도 함께 높이는 방향으로 부를 운용하는 것,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는 것입니다.
이 균형은 저절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공부를 통해서만 유지됩니다. 한 사람이 내면의 평화를 가질 때,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불안을 전이시키지 않습니다. 조급하지 않으니 거래에서 상대방을 착취하지 않습니다. 자족할 줄 아니 더 가지려는 욕망에 시장을 교란시키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내면의 평화가 시장 전체의 부를 증가시키고 주변 세계를 향상시킨다는 랍비의 말은 그래서 단순한 윤리적 권고가 아니라 경제적 통찰이기도 합니다.
그 중년 사업가는 나중에 회고록에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사십대 중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개미를 다시 보았습니다. 어릴 때는 개미의 부지런함을 배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 나는 개미에게서 경고를 보았습니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평생을 움직이면서도 정작 살지 못합니다." 진짜 부자가 되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이 어려운 이유는 돈을 모으기가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처음 왜 부자가 되려 했는지를, 끝까지 잊지 않는 일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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