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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삶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3. 22.

어린 시절, 우리는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다 넘어진 적이 있을 것입니다. 무릎에서 피가 났고, 그 자리에 딱지가 앉았습니다. 딱지가 생기면 아이들은 꼭 그것을 건드립니다. 손가락으로 긁고, 뜯고, 만집니다. 그러면 딱지는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덧나서 더 오래 남습니다. 그냥 두었더라면 자연스럽게 아물었을 상처가, 자꾸 건드리는 바람에 흉터로 남기도 합니다.

마음의 상처도 이와 같습니다. 상처가 많은 사람은 자주 불안합니다. 작은 일에도 불안하고, 큰일에도 불안합니다. 그 불안은 마음을 늘 바쁘게 만듭니다. 그리고 바쁜 마음은 어김없이 '과함'을 낳습니다. 지나치게 화를 내거나, 지나치게 참거나. 지나치게 맞춰주거나, 지나치게 몰아붙이거, 지나치게 열심히 하려 하거나, 지나치게 게을러지거나, 지나치게 예민하게 반응하거나, 지나치게 무감각해지거나, 방향은 달라도 그 뿌리는 하나입니다. 불안입니다.

과하게 행동하고 나면 어김없이 후회와 자책이 찾아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렇게 다짐하지만, 비슷한 상황이 오면 또다시 불안해지고, 또다시 과하게 행동하고, 또다시 자책합니다. 이 반복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대부분 상황을 탓하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문제라고 생각하면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게 됩니다. 그러나 상황은 늘 바뀌지 않거나, 바뀌어도 또 다른 상황이 찾아옵니다. 진짜 바라봐야 할 것은 상황이 아니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나 자신입니다.

한 직장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늘 자신이 충분히 열심히 살지 못한다는 생각에 괴로워했습니다. 아침마다 '오늘은 정말 열심히 해야지'라고 다짐했지만,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나는 왜 이렇게 의지가 약한가'라는 자책이 밀려왔습니다. 그 자책은 다시 불안으로 이어졌고, 불안은 다시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굳어졌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문제의 본질은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열심히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불안에 너무 깊이 빠져 있었던 것입니다. 열심히 하는 과정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열심히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그 두려움이 너무 커서 정작 앞으로 나아가는 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열심히 살지 못한다면 열심히 살면 됩니다. 잘 안 되면 다시 마음을 잡으면 됩니다. 그것도 잘 안 되면 또 시도하면 됩니다. 그러나 '열심히 하지 못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 마음을 지배할 때, 그 집착이 오히려 발목을 잡습니다. 과함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무언가를 향한 마음이 지나치게 커져서, 그 무게에 눌려 정작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유독 서운함을 자주 느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친구가 연락을 조금만 늦게 해도, 동료가 자신의 말을 흘려듣는 것 같아도, 가족이 자신의 감정을 알아주지 못해도 금방 서운해졌습니다. 그는 그 서운함을 없애기 위해 두 가지 방향 중 하나를 택했습니다. 어떤 날은 상대방이 서운하게 하지 못하도록 모든 것을 맞춰주었고, 어떤 날은 서운하게 한 상대에게 강하게 요구하고 바꾸려 했습니다. 어느 방향이든 관계는 점점 더 피로해졌습니다.

문제는 서운함 그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서운한 상황이 생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또 서운해지면 어쩌지'라는 불안이 앞서 행동을 과하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서운함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그 감정 자체는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다시 찾아오는 것이 두려워 과하게 대비하기 시작할 때, 관계는 자연스러움을 잃어버립니다.

그렇다면 이 불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불안은 상처에서 옵니다. 그리고 상처는 내가 갖고 싶었지만 갖지 못했던 마음에서 생깁니다. 편안함, 여유, 사랑, 이해, 안도, 기쁨, 이런 것들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았을 때 상처가 생깁니다.

어릴 적 주변으로부터 충분히 이해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 사람은 어른이 되어서도 누군가를 이해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마음이 뒤틀립니다. 지나치게 상대를 이해하려 애쓰거나, 반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분노하거나, 아니면 상대에게 과도하게 화를 냅니다. 그 모든 반응이 결국 어린 시절 이해받지 못했던 상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상처가 있는 곳에는 부자연스러움이 생깁니다. 그리고 그 부자연스러움이 쌓이면 외로움이 됩니다. 사람들과 함께 있어도 어딘가 어긋난 느낌, 가까워지려 하면 할수록 더 멀어지는 것 같은 느낌, 그 외로움을 인식하지 못하면 우리는 쉽게 이렇게 생각합니다. '저 사람 때문에, 이 환경 때문에 내가 외로운 것이다.' 물론 주변 사람이 외로움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외로움은 상처로 인해 굳어진 나의 삶의 방식에서 옵니다. 그 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사람이 바뀌고 환경이 바뀌어도 외로움은 다시 찾아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상처는 치유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외로움을 인정하고, 불안을 인정하고, 상처를 인정해 나갈 때 치유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것을 두려워합니다. 인정하는 순간 그것이 사실이 되어 버릴 것 같아서, 인정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이 될 것 같아서입니다. 그러나 딱지를 억지로 떼어내려 하면 상처가 덧나듯, 불안을 없애려 과하게 싸우면 불안은 오히려 더 커집니다. 치유의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그것은 호흡하는 것입니다. 불안한 채로, 그 불안과 함께 머무는 것입니다.

불안한 상황이 찾아올 때, 그 불안을 없애려 과하게 행동하지 말고, 그렇다고 불안을 외면하려 억누르지도 말고, 그저 이렇게 알아차려 보는 것입니다. '아, 지금 내 상처 있는 부분이 건드려지고 있구나. 그래서 불안하구나.' 그리고 잠시, 그 불안 안에 머물러 봅니다.

처음에는 견디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불안에 계속 노출되다 보면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불안이 점점 익숙해집니다. 익숙해지면 편안해집니다. 편안해지면 잠잠해집니다. 파도처럼 밀려오던 불안이 어느 순간 잔물결이 되고, 그 잔물결마저 고요해지는 때가 옵니다.

수영을 배우는 사람이 처음 물에 들어가면 몸이 굳습니다. 물이 무서워서 온 힘을 다해 버둥거립니다. 그런데 버둥거릴수록 물속으로 가라앉습니다. 수영 강사는 말합니다. "힘을 빼세요. 그냥 물에 몸을 맡겨 보세요." 처음에는 그 말이 믿기지 않습니다. 힘을 빼면 가라앉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힘을 빼면 몸이 물 위에 뜹니다. 인간의 몸은 원래 물 위에 뜨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도 그렇습니다. 불안에 맞서 버둥거릴수록 더 깊이 빠집니다. 그러나 불안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안에 잠시 머물면, 어느 순간 불안이 나를 삼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서서히, 마음의 숨이 트입니다.
부자연스러웠던 모습들이 하나씩 자연스러워지는 날이 옵니다.

이해받지 못했던 상처가 있는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과하게 반응하지 않고 그저 담담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옵니다. 서운함에 예민했던 사람이, 서운한 감정을 느끼면서도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킬 수 있게 되는 날이 옵니다.

그것이 상처가 치유되어 가는 모습입니다. 상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가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딱지가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그 자리에 새 살이 돋듯이, 불안이 잠잠해진 자리에 조용하고 단단한 평온이 자라납니다.

오늘도 불안한 당신에게, 그 불안과 잠시 함께 앉아 숨을 쉬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억지로 없애려 하지 말고, 그저 바라보면서 밀ㄹ입니다. 그 호흡이 쌓여, 언젠가 후회와 자책 없는 하루를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