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해 한여름, 한 사람이 강연을 하러 광화문으로 가던 길이었습니다. 빌딩 유리벽에 새겨진 시 한 구절이 그의 발길을 붙잡았습니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엄청난 일이다. 왜냐면 그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그는 한참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연애든, 우정이든, 결혼이든 누군가가 내 삶에 들어온다는 것은 단순한 만남이 아닙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모든 시간, 그 사람이 품어온 모든 상처와 기쁨이 함께 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을 곁에 두어야 하는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 그는 오래전, 지인의 결혼식에서 이 질문을 처음 진지하게 붙들었습니다. 같은 길을 오래 걸어온 두 사람이 마침내 삶의 동반자가 되는 자리였습니다. 일에서도, 사랑에서도 서로를 이해하고 격려해온 두 사람, 그 결혼식을 바라보며 그는 조용히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나에게 좋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
한참을 생각한 끝에 그가 내린 답은 의외로 단순했습니다. 어깨에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 세상은 빠르게 돌아갑니다. 어깨에 얹힌 짐은 늘 묵직합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 한꺼번에 무너질 것 같은 시간이 찾아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울지 않습니다. 아니, 울지 못합니다. 바쁜 일상 속에서,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강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눈물을 꾹꾹 삼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습니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오히려 맺혔던 마음이 풀립니다. 상처가 아물고, 영혼이 조금 더 가벼워집니다. 그리고 다시 걸을 힘이 생깁니다. 눈물에는 그런 힘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눈물을 흘릴 자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특히 그렇지 못한 존재가 있습니다. 바로 이 땅의 남자들입니다.
몇 해 전 겨울, 그는 바이칼 호수로 명상 여행을 떠났습니다. 광활한 얼음 호수 위에서 며칠을 보낸 일행은 귀국길에 울란바토르 공항 대합실에 모여 앉았습니다. 여러 날의 여정이 쌓인 탓인지, 일행 중 한 목사님이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 지쳐 있었습니다.
그때 향기명상 전문가인 김윤탁 박사가 조용히 그분 곁에 앉았습니다. 말 한마디 없이, 그저 손과 머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졌습니다.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한 곳 한 곳, 사랑과 정성이 담긴 손길이었습니다.
잠시 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목사님이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슴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격렬한 울음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깜짝 놀라 그를 바라봤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눈물의 의미를 알 것 같았습니다.
남자로 산다는 것, 공동체를 이끄는 목회자로 산다는 것, 그 무게와 고단함이 오롯이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 긴장되고 빽빽한 삶 속에서 차곡차곡 쌓여있던 것들이, 따뜻한 손길 하나에 녹아 흘러내린 것이었습니다.
울음을 멈춘 뒤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제 평생에 이런 눈물은 처음입니다. 어떤 힘이 있기에 이렇게 울었는지 모르겠네요." 그의 목소리는 한결 가벼웠습니다. 마치 어린 시절, 잠들기 전 어머니가 토닥토닥 다독여주던 그 순간처럼 편안해 보였습니다.
아프고 힘들 때, 망설임 없이 기댈 수 있는 어깨가 곁에 있다면 세상살이가 그토록 무겁지만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치유자'라고 부릅니다. 치유자는 칼을 대지 않습니다. 처방전을 쓰지 않습니다. 그저 곁에 있어줍니다. 경계선을 넘으려는 사람을 조용히 붙들어 주고, 이미 넘어버린 사람에게는 다시 방향을 찾도록 손을 내밀어 줍니다. 생각의 방향을, 삶의 방향을 바꾸는 일, 그것이 진정한 치유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그런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답은 하나입니다. 내가 먼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을 원한다면, 나 또한 누군가가 내 어깨에 기대어 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치유자를 인생길에서 만나고 싶다면, 내가 먼저 누군가의 좋은 치유자가 될 수 있도록 자신을 열어야 합니다. 좋은 사람은 찾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좋은 사람이 될 때, 비로소 좋은 사람이 곁에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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