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청년의 어린 시절, 외할머니의 손에는 언제나 굳은살이 박혀 있었습니다. 그는 외할머니의 손을 잡을 때마다 살짝 움츠러들었습니다. 부드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내가 넘어져 울 때면 꼭 그 거친 손으로 나를 감싸 안으셨습니다. 그 손이 가장 따뜻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그 굳은살은 상처가 아니라 수많은 마찰이 남긴 훈장이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목수가 나무를 다룰 때, 처음부터 매끈한 판자를 쓰지 않습니다. 결이 살아 있고 거칠게 솟은 원목을 대패로 밀고 사포로 갈아내며 비로소 쓸 만한 재료를 만들어 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무는 그저 원목으로 남습니다. 쓰임새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인간도 그렇습니다. 삶이라는 작업장 안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갈리고 깎입니다. 병을 앓고, 실패를 겪고, 오해를 받고, 사랑하는 것을 잃습니다. 그 과정이 고통스럽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만 그 고통이 없는 삶이 과연 더 좋은 삶인가, 그것만큼은 한 번쯤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어느 의사가 오랜 친구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아무 병도 없는 환자보다 병을 이겨낸 환자가 더 건강하다는 것을 믿네." 처음 들으면 역설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그 의사의 말은 병 자체를 찬양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병을 통과하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더 예민하게 알아가고, 어디가 약한지, 무엇이 중요한지를 배운 사람, 그런 사람이 결국 더 단단한 삶을 산다는 뜻이었습니다.
반면 아무런 시련 없이 매끄럽게만 살아온 사람은, 처음 맞닥뜨린 작은 파도에도 쉽게 흔들립니다. 물론 고통이 자동으로 성숙을 만들지는 않습니다. 같은 불길 속에서도 어떤 쇠는 강해지고 어떤 쇠는 그냥 녹아버립니다. 차이는 단 하나입니다. 깨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입니다.
고통 속에서 눈을 감아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리고, 끝나면 없던 일처럼 덮어두려 합니다. 그 사람에게 시련은 그저 소모일 뿐입니다. 그러나 아픔 한가운데서도 눈을 뜨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를 묻는 사람에게 시련은 교실이 됩니다.
깨어 있는 아픔이 더 강하다는 말은 그런 의미입니다. 아픔의 크기가 아니라, 그 아픔을 맞이하는 방식이 우리를 다르게 만듭니다. 여전히 고통은 반갑지 않습니다. 누구든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삶이 너무 오래 조용할 때, 우리는 오히려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나는 지금 안온함 속에 머물고 있는가, 아니면 성장이 멈춘 채 편안함에 길들어 있는가."
말은 달리기 위해 태어났습니다. 길들지 않은 채 광야를 뛰어다닐 때가 아니라, 무수한 훈련의 마찰을 통해 온몸으로 방향을 익힐 때 비로소 그 본래의 속도에 다가섭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흔들려야 중심을 압니다. 아파야 온전함을 아는 것입니다.
고요함 속에서도 깨어 있으려는 의지, 불편함 앞에서 달아나지 않으려는 용기, 그것이 인생을 다듬는 가장 조용하고 가장 깊은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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