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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무르지 않고 스쳐가는 마음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3. 7.

어느 늦가을 오후, 어떤 사람이 오래된 절 마당 한편에 심긴 대나무 숲 앞에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바람이 불었습니다. 대나무는 거세게 흔들렸고, 잎새들은 서로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습니다. 그런데 바람이 지나가자, 대나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꼿꼿이 섰습니다. 흔들렸다는 흔적조차 없었다. 그는 그 모습을 보며 한동안 생각에 잠겼습니다. 저 대나무는 방금 그 바람을 기억하고 있을까? 아마 기억하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정확히는 기억하되, 붙들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도 그것을 마음속에 꼭 쥐고 놓지 못합니다. 오래전 친구에게 들었던 상처 되는 말 한마디, 직장에서 억울하게 받았던 질책,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곳에서 홀로 감당해야 했던 외로움, 이런 것들이 지나간 지 한참이 지나도록 마음 한구석에 앙금처럼 가라앉아 있습니다. 몸은 이미 그 자리를 떠났는데, 마음만은 여전히 그날 그 방 안에 서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10년 전 사업에 실패한 뒤, 매번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할 때마다 그 실패의 기억을 먼저 꺼내 들었습니다.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붙어 있었습니다. 새 일이 잘될 때도, 잘 안 될 때도, 그 낡은 기억이 먼저 떠올랐습니다. 그는 10년이라는 시간을 살았지만, 마음은 여전히 10년 전 그 실패의 순간에 발이 묶여 있었습니다. 지나간 바람이 이미 떠났는데도, 그는 혼자서 그 바람을 붙들고 떨고 있었습니다.

불가에 이런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어느 스님이 제자에게 물었습니다. "연못에 기러기 한 마리가 날아와 잠깐 쉬었다 갔다. 연못은 기러기가 앉았던 자리를 기억하느냐?"

제자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습니다. "기억하지 못합니다." 스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그렇다. 기러기는 흔적을 남기려 하지 않고, 연못은 흔적을 붙들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러기가 앉았을 때, 연못은 온전히 그것을 담았다."

이것이 핵심입니다. 마음이 무감각해지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러기가 앉았을 때 연못이 그것을 받아들이듯,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충분히 느끼고 충분히 반응해야 합니다. 슬픔이 오면 슬퍼하고, 기쁨이 오면 기뻐하고, 분노가 일면 그것을 직면해야 합니다. 다만, 기러기가 떠난 뒤 연못이 다시 고요해지듯, 일이 지나간 뒤에는 마음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대를 사는 우리의 마음은 너무나 많은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침에 스쳐 간 누군가의 말, 오후에 받은 문자 한 통, 저녁 뉴스에서 들려온 불안한 소식들, 이 모든 것이 층층이 쌓여 마음을 흐리게 만듭니다. 마치 연못에 돌을 하나씩 던져 넣는 것과 같습니다. 처음엔 물결이 일지만 이내 잠잠해져야 하는데, 돌을 던지는 손이 멈추지 않으니 연못은 단 한 번도 고요해질 틈이 없습니다.

그 결과,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앞에 있는 사람을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어제의 상처가 오늘의 눈을 흐리고, 내일의 걱정이 지금 이 대화를 방해합니다. 마음이 과거와 미래 사이 어딘가에 붙들려 있으니, 정작 지금 이 자리에 온전히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평정심이란,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 상태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무엇이든 느끼되, 그것에 휩쓸리지 않는 능력입니다. 폭풍이 지나가도 뿌리는 흔들리지 않는 나무처럼, 파도가 아무리 쳐도 바다 깊은 곳은 고요한 것처럼, 삶에는 수많은 일이 바람처럼 스쳐 갑니다.

그 바람들을 하나하나 마음속에 모아두려 하면, 우리는 결국 바람 창고 안에 갇혀버립니다. 그러나 바람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는 법을 배울 때, 일이 있으면 그것에 맞게 반응하되, 일이 지나간 뒤에는 미련 없이 놓아버리는 법을 배울 때, 마음은 비로소 넓어지고, 단단해지고, 맑아집니다.

대나무처럼, 기러기가 지나간 연못처럼, 바람은 반드시 지나갑니다. 문제는 언제나, 우리가 그 바람을 얼마나 오래 붙들고 있느냐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