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살아 있음’을 너무도 당연하게 여깁니다. 숨을 쉬고, 생각하고, 움직이는 이 모든 것이 마치 내 안에서 저절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깊이 들여다보면, 생명은 결코 나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오직 하나의 생명의 근원이 있을 뿐입니다. 무한하고 전능한 생명, 모든 존재의 시작이요 끝이신 그분으로부터 모든 생명이 흘러나옵니다.
이 생명은 단순히 한 생명을 만들어 놓고 방치하는 힘이 아닙니다. 창조적인 능력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생명들을 낳고, 각각을 서로 다른 자리와 질서 속에 두셨습니다. 별과 나무와 짐승, 그리고 인간에 이르기까지 모든 피조물은 그 생명 안에서 살고, 그 생명 안에 거하며, 그 생명으로 존재를 이어 갑니다. 인간 역시 그중 하나이지만,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 앞에서 길이 행복하기 위해 창조된 존재입니다.
인간의 존귀함은 능력이나 지식에 있지 않고, 이 생명의 근원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죽음’이라는 단어 앞에서 생명을 단절된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습니다. 죽음은 끝이라고, 소멸이라고, 더 이상 없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깊이 묵상해 보면 죽음은 생명의 반대편에 서 있는 적이 아닙니다. 생명은 변할 수는 있으나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죽음이라 부르는 것은 생명이 없어지는 사건이 아니라, 생명이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옮겨 가는 변화일 뿐입니다.
우리 눈에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마치 물이 수증기가 되어 보이지 않게 되었다고 해서 물이 없어졌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생명은 다른 모양과 다른 상태로 계속 존재합니다. 죽음은 종결이 아니라 이동이며, 파괴가 아니라 변형인 것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면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도 달라집니다. 우주 안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완전히 소멸되지 않습니다. 창조자는 파괴를 위해 세상을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하물며 모든 피조물 가운데 가장 귀한, 하나님의 형상을 받은 인간이 어찌 흔적 없이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을 스스로 지우시거나, 다른 피조물이 그것을 없애도록 허락하실 리 없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인간이 죽음 이후에도 존재한다면, 그는 어디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이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지금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직결된 질문입니다.
썬다 싱은 자신의 입신, 곧 영적 체험을 통해 이 문제를 조심스럽게 이야기합니다. 그는 영계에서 본 모든 것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 세상의 언어와 비유로는 영적 실재를 온전히 담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무리한 설명은 오해를 낳을 수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본 모든 것을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모든 사람에게 유익이 될 만한, 단순하고 교훈적인 몇 가지 사실만을 나누려 합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모두 이 보이지 않는 세계로 들어가게 될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 세계에 대해 조금이라도 바르게 알고, 생과 사를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해하는 일은 결코 무익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삶을 더 진실하게, 더 책임 있게 살아가게 만듭니다.
생명이 소멸되지 않는다는 믿음은 오늘의 삶을 가볍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무겁고 깊게 만듭니다. 지금의 선택과 태도, 사랑과 미움, 믿음과 불신이 단절된 한 순간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라지기 위해 사는 존재가 아니라, 옮겨 가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생'을 두려워할 필요도, '사'를 공포로만 바라볼 필요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생명의 근원 안에 머물며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생과 사는 대립이 아니라, 하나의 길 위에 놓인 두 장면입니다. 그 길의 처음과 끝에는 언제나 변하지 않는 생명의 본원이 계십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오늘을 허비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실재를 향해 자신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준비하신 또 다른 삶의 문으로 조용히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결국 우리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사라질 것처럼 살고 있는가, 아니면 영원으로 옮겨 갈 존재로 살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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