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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

성찬이란 무엇인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5. 29.

"그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 바다 곧 디베랴 바다 건너편으로 가시매. 큰 무리가 따르니 이는 병인들에게 행하시는 표적을 봄이러라. 예수께서 산에 오르사 제자들과 함께 거기 앉으시니. 마침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께서 눈을 들어 큰 무리가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보시고 빌립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로 먹게 하겠느냐 하시니.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이라. 빌립이 대답하되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 제자 중 하나 곧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가 예수께 여짜오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 하신대 그 곳에 잔디가 많은지라 사람들이 앉으니 수효가 오천쯤 되더라. 예수께서 떡을 가져 축사하신 후에 앉은 자들에게 나눠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저희의 원대로 주시다.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시므로. 이에 거두니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 두 바구니에 찼더라. 그 사람들이 예수의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라 하더라.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한복음6:1~15)

“성찬은 복음입니다. 보이는 복음이며, 만지는 복음입니다.” 요한복음 6장의 오병이어 사건은 그 자체로 예수님의 생명 나눔을 예표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를 위해 작은 떡과 물고기를 축사하시고 나누어주셨습니다. 마침 그 날은 유월절이 가까운 시기였고, 그 떡을 축사하여 나누신 사건은 단순한 배불림의 기적이 아닌,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찢어 나누실 메시아의 자기희생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하나님이시며,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복음을
‘보이는 표적’으로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성찬입니다. 성찬은 단순한 상징 이상의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오해해서도 안 됩니다. 로마 카톨릭이 주장하듯 떡과 포도주가 실질적으로 예수님의 살과 피로 변한다고 여기는 것은, 성찬의 신비를 오히려 왜곡하고, 은혜를 마술처럼 변질시키는 오류입니다.

성찬은 복음을 먹고 마시는 시간입니다. 다시 말해, 성찬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기념”함으로써, 나의 죄를 대신하신 그리스도의 대속과 희생을 마음 깊이 새기는 ‘은혜의 자리’입니다.

성찬은 예수님의 사랑을 입체적으로 기억하는 시간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눅 22:19) 성찬은 단순한 기억 이상의 ‘감격의 기억’입니다. 사랑에 겨운 아버지가 자녀의 잠든 얼굴을 들여다보듯,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십니다. 스바냐 3장 17절처럼, 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즐거워하시며, 기뻐 노래하십니다. 성찬은 그 기쁨의 확증입니다.

성찬은 구원의 조건이 아닌, 구원의 결과입니다. 떡과 포도주를 먹는다고 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을 받은 자만이 성찬의 은혜를 누릴 수 있습니다. 구원받지 않은 자에게 성찬은 아무런 감격도, 의미도 없으며, 오히려 심판이 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고전 11:27)

성찬은 장차 올 혼인 잔치의 예표입니다.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아버지의 나라에서 너희와 함께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마 26:29) 성찬은 예수님과 교회가 완전히 하나 되는 천국의 만찬, 어린양의 혼인잔치의 ‘예고편’입니다. 이 땅에서의 성찬은 천국의 기쁨을 미리 맛보는 은혜의 시간입니다.

성찬은
“말씀이 형상이 된 복음”입니다. 말씀을 듣고 믿은 자만이, 성찬을 통해 복음의 생명력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찬을 통해 나의 죄로 말미암아 찢기신 그 몸, 흘리신 피를 기억하며, 그 사랑 앞에 다시 한 번 무릎 꿇습니다.

성찬은 의례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성찬은 종교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성찬은 형식이 아니라, 감격입니다.
당신은 성찬을 어떻게 참여하고 계십니까? 그 사랑 앞에서 눈물 나도록 감사한 마음으로, 그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심으로, 그 생명을 살아내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찬은 구속의 은혜를 감각적으로 누리는 은혜의 방편입니다. 성찬은 말씀의 실체이며, 교회의 정체성입니다.
성찬은 이 땅의 모든 예배 중 가장 깊은 복음의 깊이로 우리를 초대합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의 살과 피를 나누는 그 시간, 그는 우리 안에, 우리는 그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은혜가 또 어디 있겠습니까?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 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