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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

눈이 열렸으나 마음은 닫힌 백성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5. 29.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그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것도 보며 너희가 아랫못의 물도 모으며,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하게도 하며, 너희가 또 옛 못의 물을 위하여 두 성벽 사이에 저수지를 만들었느니라 그러나 너희가 이를 행하신 이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 날에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통곡하며 애곡하며 머리 털을 뜯으며 굵은 베를 띠라 하셨거늘, 너희가 기뻐하며 즐거워하여 소를 죽이고 양을 잡아 고기를 먹고 포도주를 마시면서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하는도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친히 내 귀에 들려 이르시되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가 죽기까지 용서하지 못하리라 하셨느니라 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이사야 22:8~14)

하나님의 개입은 고난을 통해 현실을 보게 하십니다. 이사야 22장은
‘환상의 골짜기’, 곧 예루살렘에 대한 경고입니다. 예루살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처하는 자들이 겉보기에는 평안했지만, 하나님은 아수르를 통해 위기를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라고 하신 것은, 눈이 가려진 그들에게 현실을 깨닫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신이 쌓아놓은 안전지대 안에서 살아가려 하지만, 그것이 허물어질 때에야 비로소 자신의 실상을 봅니다.

본다는 것과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이 눈을 열어주자 이스라엘은 자국의 성벽이 무너진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이 택한 길은 자기 힘과 수단으로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하신 자”는 하나님이신데 그들은 하나님을 찾지 않고, 자신들의 꾀와 열심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결국 쾌락에 도취된 신앙은 위기 가운데서도 회개하지 않는 자들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언약이 머무는 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친히 다스리시는 나라입니다. 지금 그 성이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웃고, 먹고, 마시며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내일 죽으리니 오늘 먹고 마시자.” 이것이 눈이 열렸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두운 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가 유다에게 덮였던 것을 벗기매 이 날에야 네가 수풀 곳간의 병기를 바라보았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의 눈을 여셨습니다. 그동안 자기도취에 빠져, ‘평안하다 평안하다’ 외치며 살아가던 자들에게 하나님은 적군을 앞에 두고서야 실상을 보게 하셨습니다. 성벽은 무너지고, 물은 부족하며, 집들은 허물어져야 할 형편이었습니다.

이 얼마나 익숙한 그림입니까. 오늘 우리 삶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갑작스러운 병, 사고, 경제적 위기, 관계의 파탄, 신앙의 붕괴 등, 우리는 평소에는 알지 못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닥친 고난을 통해 비로소 나의 성벽이 무너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이 다음입니다.

"너희가 다윗 성의 무너진 곳이 많은 곳도 보며 너희가 아래 못의 물로 모으며...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케도 하며…" 문제의 실체를 본 이스라엘은 그 무너진 곳을 다시 쌓기 위해 자기들이 가진 것을 총동원합니다. 집을 헐고, 물을 모으고, 무기를 꺼냅니다.

마치 이런 말처럼 들립니다.
“하나님, 제가 잘못했네요. 이제 열심히 해서 다시 회복해볼게요. 다시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헌금도 하고, 기도도 다시 시작할게요.”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일을 하신 자를 앙망하지 아니하였고 이 일을 옛적부터 경영하신 이를 공경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회개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자기 힘으로 다시 인생을 조립하려는 시도였을 뿐입니다. 그 중심엔 ‘하나님’이 아닌 ‘자기’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경고하신 마지막은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내일 죽으리니 먹고 마시자.” 이 말은 단순한 쾌락주의가 아닙니다. 그 뿌리는 절망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도 않고, 스스로도 감당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사람들은 포기하고 그저 쾌락으로 도망칩니다. 오늘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며 예배당을 드나들던 우리가 막상 인생이 흔들릴 때, 성경보다 상담을, 기도보다 계획을, 예수보다 유튜브를 먼저 찾고 결국은
"그냥 이렇게 살다 죽자"는 마음으로,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을 포장합니다.

하나님이 왜 우리의 눈을 여시는지 아십니까? 하나님은 단지 우리가 망하는 꼴을 보시려고 우리 눈을 여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눈을 여시는 이유는 단 하나, 하나님 자신을 바라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을 앙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는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이 죄악은 너희 죽기까지 속하지 못하리라.”(이사야 22:14) 무서운 심판의 선포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가볍게 여기고 눈을 열어주신 기회를 회개가 아닌 자기의 수단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회개는 무엇이겠습니까? 이사야 22장 후반부에는 ‘셈나’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자기 이름을 높이려 성안에 무덤을 짓고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위에 두려 한 교만한 관리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버림받고, 겸손한 자 ‘엘리아김’이 대신 그 자리를 얻게 됩니다. 그러나 이 엘리아김조차 결국 교만해져 멸망에 이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눈을 들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땅에서 가장 낮은 자리에 오셨고 십자가에서 끝까지 순종하셨고 겸손하셨습니다. 그분만이 무너진 우리의 성을 다시 쌓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분만이 죄로 찢긴 인생을 회복시키시는 참된 아버지의 손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눈을 열어 보여주시는 실상이 있다면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기회입니다. 우리의 무너진 성벽, 가난한 신앙, 흔들리는 관계, 위태로운 미래… 이 모든 것 안에 담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우리의 노력으로 성을 쌓지 말고, 우리의 계획으로 구원을 도모하지 말고, 우리의 감정으로 하나님을 외면하지 말고, 그리스도께 나아가십시오. 그때 비로소, 무너진 성이
하늘의 은혜로 다시 세워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