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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

천천히 흐르는 물을 버린 자들에게 임하는 파멸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5. 30.

"여호와께서 다시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 그러므로 주 내가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으로 그들을 뒤덮을 것이라 그 모든 골짜기에 차고 모든 언덕에 넘쳐, 흘러 유다에 들어와서 가득하여 목에까지 미치리라 임마누엘이여 그가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하셨느니라."(이사야 8:5~8)

이스라엘 역사 속에는 정치와 외교, 그리고 종교가 서로 얽히며 운명을 바꾸는 격변의 시기들이 존재합니다. 이사야 8장 5~8절은 그런 시기 가운데 하나인
‘시리아-에브라임 동맹전쟁’(기원전 735–732년)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 구절은 단순한 예언을 넘어, 유다의 정치적 선택과 신앙의 본질을 날카롭게 드러내는 고발장과도 같은 것입니다.

당시 중동 지역은 거대한 제국 앗수르가 급부상하며 주변 국가들에게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정세 속에서 북이스라엘(에브라임)과 아람(시리아)은 앗수르의 위협에 맞서기 위해 동맹을 맺고, 남유다 역시 이 연합에 참여할 것을 강요했습니다.

그러나 유다의 왕 아하스는 이 제안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동족 북이스라엘과 아람이 연합군을 이끌고 유다를 공격하자, 오히려 앗수르에게 군사적 지원을 요청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강대국의 힘을 의지한 신앙의 배반이었습니다.

이사야 8장 6절에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이
“조용히 흐르는 실로아의 물”을 버렸다고 지적하십니다. 실로아는 예루살렘에 있는 작은 수로,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상징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와 뜻에 따라 조용하고 평온하게 흐르는 삶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 잔잔한 신뢰를 버리고, 인간적 계산과 정치적 외교를 택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은 “유브라데 강의 창일한 큰 물, 곧 앗수르 왕과 그의 모든 위력”(7절)을 그들에게 덮치게 하시리라 경고하십니다.

앗수르의 군대는 유다를 돕는 척하면서 점차 남유다 전역을 영향력 아래 두고, 결과적으로 유다는 그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됩니다. 이는 물이 넘쳐 흘러 목에까지 차오르는 모습으로 묘사되며(8절), 하나님을 버리고 인간의 힘을 의지한 결과가 얼마나 치명적인지를 상징적으로 드러냅니다.

이사야 8:8의 마지막에
“임마누엘이여 그의 펴는 날개가 네 땅에 가득하리라" 라는 말씀이 등장합니다. 이 문장은 경고와 소망이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이시지만, 그 하나님을 거부하고 인간적 길을 선택한 백성에게는, 임마누엘의 이름조차 심판의 증거가 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이 기쁨이 아니라 두려움이 된 것입니다.

이사야 8장 5~8절은 단순히 과거의 정치사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삶과 인간적 수단을 의지하는 삶의 갈림길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 영적 질문입니다.
‘실로아의 물’을 버리는 순간, 우리는 필연적으로 ‘홍수’의 위력에 삼켜질 수밖에 없습니다. 조용하고 작아 보여도, 하나님의 보호는 모든 인간적 계산보다 깊고 강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 인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너무 느리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천천히 흐르는 강물과 같습니다. 소리 없이, 때로는 눈에 띄지도 않게 흘러가지만, 그것은 생명을 살리고 기쁨을 주며 안식을 주는 물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그 물을 버립니다. 더 크고 빠르고 강한, 즉각적인 성과와 자극을 주는
"흉용하고 창일한 큰 하수"를 택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앗수르의 물결에 삼켜지고 맙니다.

이 경고는 이스라엘만의 과거 이야기가 아닙니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실로아의 물’이 있습니다. 예배의 자리, 조용한 기도 시간, 말씀 앞에 멈추는 그 시간들이 너무도 천천히 흘러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그 은혜의 강이지만 그 강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바꾸시는 진짜 통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바쁩니다. 목표가 있습니다. 쉴 수 없습니다. 내 뜻대로, 내 시간 안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모든 것을 이루고 싶습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기다리기엔 조급합니다. 그래서 실로아의 물을 버리고, 아수르의 큰 강물 앞에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에게
‘임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경고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지만, 우리가 그 하나님을 버린다면 그 하나님은 우리를 심판하시는 분으로 다가오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심판은 단순히 외적인 멸망만이 아닙니다. 내 삶의 방향이 무너지고, 내가 믿고 의지하던 것들이 헛된 것임이 드러나는 영적인 붕괴입니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 없는 성취가 결국 이르는 파국입니다.

‘안식’이라는 말은 단순한 휴식이 아닙니다. 숨을 돌리는 것입니다. 헐떡이며 달려가던 내가 하나님의 손에 멈추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 인생을 ‘막으십니다’. 가시덤불로 막고, 담으로 막고, 실패로 막으십니다. 그것은 우리를 망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참된 안식 속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자비입니다. 그 막힘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가 추구하던 것의 헛됨을 보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깊고 조용하게 흐르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성공과 가짜 행복을 벗겨 보게 하십니다. 화려해 보이던 삶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바쁘게 달려가던 길이 얼마나 헛된지를 알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멈춘 자에게, 하나님은 은혜의 물줄기를 다시 흘려 보내십니다. 그것이 회복입니다. 그게 구원입니다.

진짜 은혜를 아는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 안에 박혀버리셨기에, 이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보고, 긍휼로 행하며, 말씀으로 사랑을 전합니다. 사람의 눈에는 작아 보일 수 있고 느리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천국의 물줄기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자들을 통해 그분의 나라를 이루십니다.

오늘도 하나님은 우리를 조용히 부르십니다.
“멈추어라. 내게로 돌아와라. 천천히 흐르는 내 은혜에 네 몸을 맡겨라. 너를 쫓아오는 큰 하수에서 내가 건질 것이다. 임마누엘, 내가 너와 함께 하노라.” 바쁘게 숨 몰아쉬며 달려온 삶의 걸음을 멈추고, 그분 앞에 무릎 꿇으시길 바랍니다. 그때야 비로소 우리는 참된 안식을 알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