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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으로

하나님의 사랑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5. 28.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한복음 3:14~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이 말씀은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가장 널리 인용되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 말씀은 본문에서 분리된 채, 복음의 본질과 맥락을 떠나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이 말씀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므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신다'는 보편구원론과, '인간의 자유의지로 믿음을 선택해야 한다'는 알미니안주의의 주장에 자주 동원됩니다.

하지만 요한복음 3장 16절은 예수님의 논리 전개 중 마지막 절로서, 그 앞선 말씀들, 특히 14절, 15절과 분리되어 해석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이후 이어지는 말씀이 바로 16절입니다.“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예수님은 민수기 21장의 사건, 곧 광야에서 불뱀에 물린 자들이 놋뱀을 쳐다봄으로 살아났던 사건을 인용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단지 모든 인류에게 보편적으로 구원의 문을 열어주는 제안이 아니라, 반드시 주어진 약속이며 완전한 성취임을 보여주는 강력한 예표입니다.

민수기에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놋뱀을 본 것이 아닙니다.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자는 죽었습니다. 놋뱀을 쳐다본 자만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자', 곧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만이 영생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믿음조차도 인간의 선택이나 결정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예수님은 그 누구에게나 영생이 주어진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엡 2:8~9).

그렇다면 누가 이 믿음을 받을 수 있습니까? 바로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택하신 자들입니다. 이 말씀은 칼빈주의의 두 핵심 교리, 곧 무조건적 선택과 제한 속죄를 분명히 지지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셨지만, 이 사랑은 무분별하거나 감정적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은 구체적이며 인격적인 선택 가운데 나타납니다. “세상”이라는 단어는 모든 인간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 안에는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추상적 기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분명하고 실제적인 구원을 보장하며, 택하신 자들을 반드시 구원으로 이끄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이 복음의 깊이를 알지 못하면, 우리는 언제든지 인간 중심적 구원론, 곧 인간의 결단과 선택, 노력에 의한 구원이라는 잘못된 신앙으로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졌다는 사실은 우리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운 작정과 부르심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히 자랑할 것이 없고, 오직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은혜의 풍성함을 노래할 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누구에게나 열린 가능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를 위해 죽으신 십자가입니다. 그 누군가는 바로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이며, 그 안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은 전적인 은혜입니다.

복음은 인간의 감동이나 위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이 진리를 우리가 붙들고 살아간다면, 우리는 복음을 결코 값싸게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안다는 것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일인지, 요즘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말씀은 많은 이들이 달달 외우는 성구지만, 정작 그 사랑이 나에게 주어진 사랑이라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잠잠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 나입니까? 왜 나 같은 죄인에게 그 사랑이 임했습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들리신 사건은, 그냥 세상을 향해 손 내미신 사건이 아닙니다. 그분은 그냥 ‘열어놓으신 분’이 아니라, 확실히 구원하신 분이셨습니다. 민수기에서 놋뱀을 쳐다보지 않은 자는 죽었고, 쳐다본 자만 살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여전히, 십자가를 진정으로 바라보는 자는 살고, 그렇지 않은 자는 죽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 눈이 내 안에 생겼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내가 믿었다기보다, 믿게 되었다는 고백이 참된 신자의 고백입니다. 그 말은 곧, 내가 선택받은 자였다는 증거입니다. 이 복음을 깨달으면, 우리는 더 이상 사람들을 숫자로 보지 않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도, 회심의 결과를 조급히 재단하지 않습니다. 그저 우리는 씨를 뿌릴 뿐이고, 누가 자라날지, 누가 영생을 얻을지는 오직 하나님만이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사실 앞에서 평안합니다.

십자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높은 곳에 들렸지만, 아무나 볼 수 있는 사건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그 눈, 그 심령, 그 고백은 하나님께로부터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십자가는 누구를 위한 것입니까? 예.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 십자가를
‘보게 되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선택받았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자랑하지 마십시오. 스스로를 자랑하거나, 남보다 먼저 깨달았다고 우쭐하지도 마십시오. 도리어 이 은혜 앞에서 무릎 꿇고, 날마다 그 십자가를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오늘도 다시금 고백합시다.
"주여, 나를 위해 들리신 그 십자가 외에 다른 구원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