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편 141:2)
민준이라는 사람은 회사에서 팀장으로 승진한 지 석 달째였습니다. 처음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회의 때마다 목소리를 높여야 했고, 보고서를 더 많이 검토해야 했고, 더 빠르게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압박이 늘 따라다녔습니다.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리더란 무엇인가? 더 크게 말하는 사람인가, 더 많이 아는 사람인가?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야근을 마치고 텅 빈 사무실에 혼자 남았을 때였습니다. 형광등 불빛 아래 지쳐 앉아 있던 그는,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습관을 떠올렸습니다. 눈을 감는 것과 그리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 저는 어떤 팀장이 되어야 합니까?" 짧고 서툰 기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 무언가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시편 141편은 다윗이 쓴 기도의 시입니다. 그런데 이 시에서 다윗이 구하는 것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그는 적군의 패퇴를 구하지 않습니다. 왕국의 번영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가 구하는 것은 단 하나, 자신의 기도가 주님 앞에 향연처럼, 저녁 제사처럼 올라가는 것입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 141:2) 아침 분향과 저녁 제물, 이스라엘의 성전에서 하루도 빠짐없이 드려지던 예식이었습니다. 다윗은 바로 그 리듬으로 기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특별한 날만이 아니라, 매일, 전쟁에서 이겼을 때만이 아니라, 쫓기고 지쳐 있을 때도, 살아 있는 동안 내내, 그에게 살아 있다는 것은 곧 기도하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흔히 리더십을 가시적인 것에서 찾으려 합니다. 카리스마 있는 언변, 냉철한 판단력, 넓은 인맥, 탁월한 전략, 그러나 다윗의 리더십의 뿌리는 그런 것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으로 기억되지만, 그 비결은 왕도를 학습한 데 있지 않았습니다. 뛰어난 스승에게 제왕학을 배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 그가 눈을 감을 줄 알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눈을 감는다는 것은 무력함의 표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보이는 세계 너머에 더 큰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의 자세입니다.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도, 사울의 추격 앞에서도, 반란을 일으킨 아들 앞에서도 눈을 감고 주님께 아뢰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사자처럼 용맹하면서도 목자처럼 온유할 수 있었습니다. 위엄과 따뜻함이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할 수 있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습니다.
민준은 그날 이후로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출근 전 지하철 안에서 눈을 감고 짧게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거창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오늘 팀원들에게 제가 먼저 귀 기울이게 해주세요."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 회의에서 그는 더 적게 말했고, 팀원들은 더 많이 말했습니다. 그리고 회의가 끝난 뒤, 한 팀원이 복도에서 그에게 조용히 말했습니다. "팀장님, 요즘 왠지 믿음직스러워요." 민준은 자신이 더 크게 말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더 많이 준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눈을 감는 시간이 생겼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유독 바리새인들을 향해 날카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눈 먼 인도자들이여."(마 23:16) 그들은 분명히 눈을 뜨고 있었습니다. 율법을 꿰뚫고 있었습니다. 성전을 드나들며 매일 예식을 챙겼습니다. 그런데 왜 '눈 먼 자'라고 하셨을까요? 그들에게 없었던 것은 눈을 감는 시간이었습니다. 기도는 있었으나 하나님을 향한 기도가 아니었습ㄴㄱ다. 그것은 자신의 의를 확인하는 의식이었고, 사람들에게 보이려는 퍼포먼스였습니다. 주님을 의지하지 않는 종교적 열심은, 결국 더 정교한 자기중심성에 불과합니다. 눈을 뜨고 있지만, 보이는 세계만 보는 사람, 그것이 바로 눈 먼 자의 본질입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바리새파는 건재합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라, 각종 콘텐츠와 성과와 영향력의 무대 위에 서 있습니다. 기도 없이 분주하고, 주님 없이 열심이며, 눈을 감지 않아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합니다.
시편 141편은 또 하나의 고백을 품고 있습니다. 다윗은 의인이 자신을 책망하더라도 그것을 은혜로 받겠다고 말합니다.(5절) 그러나 악인의 진수성찬은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애정을 가지고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을 가까이하고, 달콤한 말로 아첨하는 사람을 멀리하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도하는 사람만이 도달할 수 있는 분별력입니다. 인기를 좇는 눈이 아니라, 진실을 보는 눈은 역설적으로, 눈을 감는 기도 속에서 열립니다.
주님은 오늘도 눈을 감을 줄 아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더 크게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더 깊이 엎드리는 사람, 보이는 세계에서 힘을 얻는 사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힘을 얻는 사람, 그런 사람에게 주님은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리더십을 주십니다.
사자의 용기와 목자의 온유함이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리더십,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통로는, 우리가 눈을 감는 그 순간에 열립니다. 눈을 감으십시오. 그때 비로소 더 넓은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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