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시편 139:7)
어떤 날은 아무런 예고도 없이 삶이 뒤집어집니다. 어제까지 멀쩡하던 일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믿었던 관계가 갑자기 끊어지고, 계획했던 미래가 손가락 사이로 모래처럼 흘러내립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묻습니다. 지금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건 나를 살리는 것인가, 죽이는 것인가?
마이클 야코넬리의 책 『하나님과 함께 놀다』에는 한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녀는 바다거북 산란지로 유명한 어느 섬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뜨거운 모래 위에 지쳐 쓰러진 거북 한 마리를 발견합니다. 급히 물을 뿌려 주고 관리인을 불렀습니다. 그런데 관리인의 구조 방식이 너무 낯설었습니다. 거북을 거꾸로 뒤집은 채 앞발에 타이어 체인을 걸고, 지프에 매달아 모래 위를 전속력으로 달리기 시작한 것입니다. 입에 모래가 가득 밀려들고, 고개는 뒤로 꺾이고, 보는 이가 다 안타까울 지경이었습니다.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여인의 마음속에 그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바닷가에 이르러 체인을 풀고 거북을 제자리로 돌려놓자, 죽은 듯 미동도 없던 거북이 천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아주 서서히, 파도 속으로 사라져 갔습니다. 여인은 그 순간을 이렇게 적었습니다. "거북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며, 악몽같이 끌려오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내 삶을 뒤집어 놓은 손이 지금 나를 죽이는 것인지 살리는 것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는 것이다."
시편 139편을 쓴 다윗은, 이 여인이 느낀 것과 비슷한 감각을 훨씬 이전에 이미 언어로 풀어 놓았습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시 139:1) 히브리어 원문에서 '살펴보셨다'는 단어는 단순한 관찰이 아닙니다. 광물의 순도를 확인하기 위해 불 속에 넣어 검증하는 행위, 즉 철저한 검증과 깊은 인식을 뜻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피상적으로 훑어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앉고 일어서는 것, 멀리서도 내 생각을 아시고, 내가 어디를 가든 그 길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심지어 내 혀에 말이 올라오기도 전에 이미 그 말을 다 알고 계십니다. 이런 분이 지금 내 삶을 붙들고 계신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요즘 젊은 세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 중 하나는 '통제력을 잃는 것' 입니다. 취업, 관계, 미래 설계, 모든 것을 내가 계획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조율해야 한다는 압박이 극심합니다. SNS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잘 관리된 타인의 삶'을 보여 주고, 우리는 나의 삶이 그 기준에서 얼마나 벗어나 있는지를 측정하며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내비게이션도 때로는 예상치 못한 길로 우회시킵니다. 처음에는 왜 이 길이야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면, 앞에 사고가 났거나, 더 빠른 길이 있었거나, 아니면 그 우회로에서 예상치 못한 무언가를 만나게 됩니다. 문제는 내비게이션을 신뢰하느냐 안 하느냐입니다.
시편 139편은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올라가는 하늘도, 내려가는 음부도, 새벽 날개를 치며 달아나는 바다 끝도, 그 모든 곳에 그분이 이미 계십니다. 내가 피할 수 없어서가 아니라, 그분이 먼저 거기 계시기 때문입니다.
대학교 4학년이던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공무원 시험에 최종 불합격했습니다. 3년을 쏟아부은 결과였습니다. 그날 밤 그는 방 안에 혼자 앉아, 천장을 보며 아무 말도 못 했습니다. 인생이 거꾸로 뒤집혀 모래 위를 끌려가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불합격이 계기가 되어, 그는 전혀 생각지 않았던 사회복지 분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몇 년 후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험에 붙었더라면 지금 내가 없었을 거예요. 그때 떨어진 게 내 인생 최고의 사건이었습니다." 그는 거북이었습니다. 모래 위를 끌려가면서, 그건 자신을 살리는 손이었다는 걸 그 순간엔 몰랐습니다.
시편 139편 마지막에서 다윗은 기도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시 139:23~24) 이 기도는 두렵지 않은 사람의 기도가 아닙니다. 살피심을 감당할 자신이 있는 사람의 기도도 아닙니다. 이 기도는 그래도 믿는다는 사람의 기도입니다. 뒤집어지는 게 두렵지만, 그 손을 알기에 내어맡기는 기도입니다.
삶이 뒤집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어디로 끌려가는지 모르는 날이 있습니다. 입에 모래가 가득 들어차는 것 같은 날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손이 나를 만드신 손이라는 것을, 내 앉고 섬을 속속들이 아시는 손이라는 것을,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나를 지으신 손이라는 것을 내가 안다면, 이보다 멋진 경험이 또 있을까요? 오늘도 그 멋진 경험을 할 수 있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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