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편 136:12)
허공입니다. 발이 닿는 곳이 없습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아득하고, 위를 올려다보면 그저 공중뿐입니다. 서커스 단원이 공중에 몸을 던지는 그 순간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극단적인 무방비의 순간입니다. 화려한 조명 아래 수백 명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고, 박수와 탄성이 터져 나오지만, 정작 그 자신은 단 한 가지만을 생각합니다. '그가 나를 잡을 것이다.'
헨리 나우웬의 책 《춤추시는 하나님》에 나오는 이 서커스 단원은 한 가지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사람들은 공중제비를 도는 자신을 영웅으로 여기지만, 진짜 영웅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허공에서 자신을 '잡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 믿고 몸을 맡기는 것뿐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나우웬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바로 그런 분이라고, 언제나 우리를 잡으러 손을 뻗고 계신 분이라고 속삭입니다.
시편 136편은 반복의 시편입니다. 26번에 걸쳐 같은 후렴구가 울려 퍼집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처음에는 단순한 반복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읽다 보면 깨닫습니다. 이것은 수사학적 기교가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역사 속에서 실제로 경험한 것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그 모든 장면마다 동일한 고백을 드리는 것입니다. 창조의 아침에도, 출애굽의 밤에도, 광야의 한낮에도, 가나안 정복의 땀 속에서도, 그리고 바벨론 포로의 눈물 속에서도,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 사실을 26번이나 붙들고 놓지 않습니다. 마치 파도처럼, 기도할 때마다 그 진실이 밀려옵니다.
12절이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강한 손과 펴신 팔로 인도하여 내신 이에게 감사하라." 여기서 등장하는 두 단어인 '강한 손'과 '펴신 팔'은 구약성경에서 출애굽을 묘사할 때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입니다. 이집트의 절대 권력 아래 신음하던 히브리인들, 그들에게 파라오의 손은 철장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손은 달랐습니다. 억압하는 손이 아니라 건져 내는 손이었고, 묶는 팔이 아니라 품어 안는 팔이었습니다.
1980년대 한국의 어느 탄광 마을에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칠흑 같은 갱도 깊은 곳에서 일하던 광부 한 사람이 갑작스러운 낙반 사고로 고립되었습니다. 동료들이 무너진 갱도 밖에서 밤새 손으로 흙을 파냈습니다. 기계도 소용없었습니다. 무너진 구조물 때문에 중장비가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열두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좁은 틈이 생겼을 때, 구조대원 하나가 팔을 뻗었습니다. 어둠 속의 광부도 떨리는 손을 내밀었습니다. 두 손이 맞닿는 순간, 갱도 밖에 모여 있던 가족들 사이에서 울음이 터졌습니다. 그 손 하나가 생사의 경계선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그러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 섰을 때, 뒤에서는 파라오의 군대가 몰려왔습니다. 앞에는 건널 수 없는 바다가 있었습니다. 퇴로도, 돌파구도 없어 보이는 그 절벽 같은 순간에, 하나님은 손을 내미셨습니다. 바다가 갈라지고 길이 났습니다. 히브리인들이 한 일은 그 길을 걸어가는 것뿐이었습니다. 길을 만든 것은 하나님의 손이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때로 그 갱도와 닮아 있습니다. 불의의 사고, 예기치 못한 병, 오래된 관계의 균열, 지쳐 버린 마음, 어떤 날은 어디서 빛이 올지조차 모른 채 그냥 어둠 속에 앉아 있게 됩니다. 그런 시간이 길어지면 사람은 묘한 것을 움켜쥐기 시작합니다. 불안을 손에 쥡니다. 분노를 가슴에 품습니다. 체념을 이불처럼 두릅니다. 어쩌면 그것들이 유일하게 만져지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시편 136편은 바로 그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이 시편이 쓰인 배경 중 하나는 바벨론 포로기로 추정됩니다. 고향을 잃고, 성전을 잃고, 나라를 잃은 사람들이 부른 노래입니다. 그들에게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라는 고백은 감정적 흥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뼈가 시린 현실 앞에서 역사를 다시 꺼내 드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전에도 손을 내미셨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 손은 거두지 않으셨을 것이다.'
믿음이란 때로 이런 것입니다. 감정이 확신을 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흔들리는 감정을 손에 쥔 채로 역사 속의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억이 믿음의 근육을 단련합니다. 코리 텐 붐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들을 숨겨 주다가 나치에게 발각되어 강제수용소에 끌려갔습니다. 라벤스브뤽 수용소에서 그녀는 언니 베치를 잃었습니다. 차마 눈을 뜰 수 없는 비참함 속에서도 그녀는 하나님을 놓지 않았습니다. 아니, 더 정확하게는 하나님이 그녀를 놓지 않으셨습니다. 훗날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깊은 구렁 속에 있어도, 하나님의 손은 더 깊다." 하나님의 팔이 더 길다는 고백이었습니다. 어떤 심연도 그분의 팔보다 깊지 않다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도 같은 것을 보았습니다. 강한 손, 펴신 팔, 그것은 단순히 출애굽이라는 역사적 사건에만 머무는 표현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담은 언어입니다. 그분은 손을 움츠리지 않으십니다. 그분의 팔은 언제나 뻗어 있습니다.
서커스 단원이 공중에 몸을 던질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잡는 사람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그 신뢰는 아름다운 한 번의 비행을 가능하게 합니다. 만약 그가 허공에서 버티려 한다면, 온몸에 힘을 주고 혼자 살아남으려 한다면, 오히려 잡힐 수 없게 됩니다.
우리도 때로 너무 많은 것을 쥐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통제해야 한다는 강박, 남에게 보이기 싫은 상처, 아직 내려놓지 못한 원망, 그것들을 꼭 쥐고 있는 한, 하나님의 손이 다가와도 잡히지 않습니다. 잡히려면 손을 펴야 합니다.
감사하라고 시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강한 손과 펴신 팔에 감사하라고 말입니다. 그 감사는 이미 다 잘 된 사람의 여유로운 감사가 아닙니다. 아직 길을 모르는 자가, 그래도 그 손을 신뢰하기로 결단하며 드리는 감사입니다. 감사가 먼저입니다. 이해는 나중에 옵니다.
팔을 펴십시오. 하나님의 손은 충분히 크고, 충분히 강하고, 충분히 가깝습니다. 그 손이 우리를 잡을 것입니다. 아니, 이미 잡고 계십니다.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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