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렐루야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하라 여호와의 종들아 찬송하라. 여호와의 집 우리 여호와의 성전 곧 우리 하나님의 성전 뜰에 서 있는 너희여, 여호와를 찬송하라 여호와는 선하시며 그의 이름이 아름다우니 그의 이름을 찬양하라.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시편 135:1~4)
마이애미 공항은 늘 분주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이는 그곳에서, 쿠바에 파송된 한 선교사가 오래된 친구를 만났습니다. 3년 전 쿠바를 떠나 미국으로 이주한 그 친구는, 공항에서 짐을 운반하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자리를 잡고 커피와 스낵을 나눴습니다. 선교사가 계산하려 하자, 친구가 손을 내밀어 막았습니다. "이제 나도 이 정도 지출은 할 만큼 삽니다. 그리고 행복합니다."
선교사는 잠시 말을 잃었습니다. 공항 짐꾼의 삶이 행복하다는 말이 선뜻 납득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친구가 덧붙였습니다. "가장 좋은 건,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과를 기다리며 살게 됐다는 겁니다. 선택의 결과가 나쁘든 좋든 상관없이, 그게 행복이란 걸 알게 됐습니다." 그 말의 무게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가 무엇을 두고 온 사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쿠바를 탈출한다는 것은 낭만적인 모험이 아닙니다. 그것은 목숨을 담보로 한 도박입니다. 가족과의 이별, 재산의 포기, 발각될 경우 투옥 혹은 죽음, 그 모든 위험을 감수하고 그는 선택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그의 손에 쥔 것들인 이주한 땅, 작은 일자리, 새로 사귄 친구들은 단순한 소유물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과 맞바꾼 것들입니다. 그렇기에 그토록 소중하고, 그렇기에 그토록 행복한 것입니다. 선택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그리고 그 대가가 클수록, 선택받은 존재의 가치는 더욱 빛납니다.
시편 135편은 이 진리를 우주적인 차원에서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야곱 곧 이스라엘을 자기의 특별한 소유로 택하셨음이로다"(4절). 히브리어 원문에서 '특별한 소유'로 번역된 단어는 세굴라, 왕이 자신의 보물창고에 따로 간직하는 가장 귀한 재산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일반 재화가 아니라, 특별히 애착을 가지고 아끼는 것,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그렇게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호칭은 오늘날 교회와 성도에게로 이어집니다(벧전 2:9).
그런데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그토록 특별하게 만듭니까? 우리 안에 어떤 빛나는 자질이 있어서입니까? 시편은 그 질문에 분명히 답합니다. 이스라엘은 열방 중에서 가장 강하거나, 가장 지혜롭거나, 가장 도덕적인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성경은 그들이 목이 곧고 반역하는 백성이었음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택하셨습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사랑입니다.
신명기 7장이 그것을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기 때문이 아니니라 … 오직 여호와가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그러나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합니다. 그 사랑이 얼마나 깊은 것인지를, 복음은 훨씬 더 선명하게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공항에서 만난 쿠바인 친구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선택했습니다. 그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선택하신 분은 다릅니다. 그분은 목숨을 걸었을 뿐 아니라, 실제로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의 특별한 소유로 삼으시기 위해 치르신 대가는 독생자의 십자가였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그것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모든 것을 건 선택, 그것이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십자가는 우리의 가치가 우리 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그분의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증명합니다.
마이애미 공항에서 짐을 나르는 그 친구의 얼굴에 깃든 행복은, 어쩌면 선택받은 자의 얼굴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는 자신이 얼마나 큰 대가로 이 땅을 얻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택의 무게를 아는 사람은, 선택받은 것들을 함부로 여기지 않습니다.
성도도 그래야 합니다. 우리가 예배하는 이유, 찬양하는 이유, 주님을 송축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불린 사람들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거신 분이 모든 것을 드려 택하신 사람들입니다. 그 사랑이 영원하고 성실하다고 시편은 고백합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건지신 그 팔이, 지금도 우리를 붙들고 있습니다. 시편 135편이 울려 퍼지는 방향은 하나입니다. 위를 향한 찬양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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