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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말씀 묵상

시편 133편 - 이다지도 좋을까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6. 2.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 같고,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편 133:1~3)

1950년대 초, 전쟁의 포화가 가라앉은 직후의 일입니다. 경기도 어느 마을에 살던 한 노인은 매년 추석이 되면 마루 끝에 앉아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형이 그쪽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전쟁 통에 헤어진 뒤 소식이 끊겼습니다. 노인은 아흔이 넘도록 기다렸습니다. 끝내 상봉하지 못하고 세상을 떴습니다.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을 기억합니다. "
형제가 함께 살 수 있다면 그게 천국이지." 단 한 마디였습니다. 그러나 그 한 마디 속에 평생의 그리움이 담겨 있었습니다.

해방과 분단이 75년을 훌쩍 넘겼습니다. 가족 상봉을 기다리던 분들 대부분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분단의 그늘은 여전히 우리 사회 깊숙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핵 위협과 전쟁에 대한 불안은 끊이지 않고, 자유와 정의, 평화와 다양성의 물꼬는 여전히 막혀 있습니다. 한반도는 오늘도 보이지 않는 싸움터입니다.

시편 133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
이다지도 좋을까, 이렇게 즐거울까! 형제들 모두 모여 한데 사는 일!" (1절, 공동번역) 감탄사입니다. 찬탄입니다. 형제가 함께 산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시편 기자는 온몸으로 외칩니다. 이 짧은 시는 그냥 아름다운 풍경을 노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뒤에는 오랜 분열과 갈등과 눈물의 역사가 깔려 있습니다.

이스라엘도 우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더 비극적이었습니다. 다윗의 왕국은 솔로몬 사후 둘로 쪼개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앗시리아의 손에 무너져 민족의 정체성마저 잃어버렸습니다.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짓밟혀 왕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낯선 땅으로 끌려갔습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고레스 왕의 해방령이 선포됐지만, 포로 생활에 익숙해진 많은 이들은 선뜻 고향 길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낯선 땅이 오히려 더 익숙해진 탓이었습니다. 뿔뿔이 흩어진 채 이름뿐인 형제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런 형제들을 향해 133편의 순례자들은 노래합니다. 서로 오래 싸웠어도, 데면데면하게 남처럼 되어버렸어도, 그래도 형제라면 돌아올 수 있다고, 함께 주님의 복을 누리자고 말입니다. 어느 선교사의 이야기입니다. 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사역하던 그는 1994년 대학살의 현장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후투족과 투치족이 이웃을 향해 칼을 들었던 그 땅에서, 십여 년이 지난 뒤 작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교회 안에서 가해자와 피해자가 한 테이블에 앉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
우리는 같은 아버지의 자녀'라는 고백이었습니다. 형제라는 사실이 모든 상처보다 깊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형제의 연합을 두 가지 이미지로 그립니다. 하나는 대제사장 아론의 머리에 부어진 기름입니다. 그것은 머리에서 수염을 타고 흘러 옷깃까지 적셨습니다. 성별의 기름이 온몸에 스며드는 이 그림은, 형제의 연합이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거룩한 은혜임을 말합니다. 또 하나는 헤르몬산에서 내려오는 이슬입니다. 메마른 시온 땅을 적시는 그 이슬처럼, 형제의 화해는 척박한 현실에 생명을 불어넣습니다. 시편 기자는 거기에 주님께서 복을 명하신다고, 영생이 거기에 있다고 말합니다.

사실 형제끼리의 갈등은 성경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가인과 아벨, 야곱과 에서, 요셉과 그의 형들입니다. 아름다운 연합보다 쓰라린 분열의 장면이 더 많습니다. 그럼에도 시편 기자는 노래합니다. "
이다지도 좋을까!" 이 감탄은 이미 이루어진 현실에 대한 묘사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계에 대한 선언입니다. 동시에 그 세계를 향한 초대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같은 성도들 사이에서도 오해가 쌓이고, 말 한마디에 마음이 갈라지고, 언제부터인가 데면데면해진 형제가 생깁니다. 바로 그때, 133편의 순례자들이 우리 곁에 서서 속삭입니다. "
그래도 형제잖아요. 돌아가요. 함께라야 소명도 살아나고, 복도 흐릅니다."

아론의 기름이 수염 끝까지 흘러내리듯, 하나님의 은혜는 막힌 관계 속으로도 파고듭니다. 헤르몬의 이슬이 메마른 땅을 살리듯, 화해 한 걸음이 굳어버린 공동체를 되살립니다. 그 복을 명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형제가 함께 사는 것이 천국의 모습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이며, 우리가 이 땅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깊은 기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