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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시편 92편 - 늘 푸른 나무로 산다는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5.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성장하리로다. 여호와의 집에 심긴 자들이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리로다. 그들은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니" (시편 92:12~14)

아침 산책길에서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곳에 갑자기 화려한 색깔로 피어난 들꽃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 생명력에 감탄하다가도, 며칠 뒤 같은 길을 지나면 이미 시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보게 됩니다. 계절이 지나가면서 그렇게 덧없이 사라지는 것이 들꽃의 운명입니다.

시편 92편은 악인들을 바로 이 들꽃에 비유합니다.
"악인들이 풀처럼 돋아나고, 사악한 자들이 꽃처럼 피어나더라도, 그들은 영원히 멸망하고 말 것이다." 한때는 찬란해 보이고, 세상을 다 가진 듯 화려해 보여도, 결국 그들의 번영은 계절을 넘기지 못하는 들꽃처럼 덧없다는 것입니다.

반면 의인은 어떤 존재일까요? 시편 기자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의인은 종려나무처럼 우거지고, 레바논의 백향목처럼 높이 치솟을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들꽃이 아니라 나무입니다. 그것도 사시사철 푸른 잎을 간직한 채 우뚝 서 있는 나무 말입니다.

나무와 들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바로 뿌리입니다. 들꽃은 얕은 땅에 뿌리를 내려 빠르게 자라지만, 깊이가 없어 쉽게 말라버립니다. 반면 나무는 깊고 단단하게 뿌리를 내립니다. 시간이 걸리지만, 한번 자리를 잡으면 폭풍우가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시편 기자는 의인이 어디에 뿌리를 내렸는지 분명히 말합니다.
"주님의 집에 뿌리를 내렸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비밀이 있습니다. 의인의 힘은 자기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그분의 말씀, 그분의 임재 안에 깊이 뿌리내린 삶에서 나옵니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가뭄이 와도 시들지 않습니다. 지하 깊은 곳에서 생명수를 길어올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께 뿌리내린 의인은 인생의 가뭄과 시련 속에서도 마르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인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이다. 늙어도 풍성한 진액으로 늘 푸름을 유지하기에 언제고 많은 열매를 맺는다." 이 얼마나 놀라운 약속입니까?

우리는 보통 나이가 들면 시들어간다고 생각합니다. 젊음의 활력이 사라지고, 열정이 식고, 생산성이 떨어진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 뿌리내린 사람의 인생은 다릅니다. 육체는 늙어갈지 몰라도, 영은 오히려 더 깊어지고 풍성해집니다.

"풍성한 진액으로 늘 푸름을 유지한다"는 표현을 음미해보세요. 진액은 나무의 생명력입니다. 겨울에도 나무가 살아있는 것은 수액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나이가 들어도 내면에 생명의 수액이 흐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의 살아있는 교제, 날마다 새롭게 공급되는 은혜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언제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0대의 열매가 있고, 40대의 열매가 있고, 60대의 열매가 있고, 80대의 열매가 있습니다. 각 계절마다 다른 열매지만, 모두 귀하고 의미 있는 열매들입니다.

"아침마다 이런 확신으로 주님을 찬양하는 인생은 얼마나 행복할까."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이런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삶을 상상해보십시오. "나는 들꽃이 아니라 나무다. 주님께 뿌리내린 나무다. 오늘 무슨 일이 일어나든, 나는 푸를 것이다. 나는 열매를 맺을 것이다. 나의 인생은 헛되지 않다."

이것이 바로 찬양입니다. 찬양은 단순히 좋은 기분에서 나오는 노래가 아닙니다. 진리에 대한 확신에서 나오는 고백입니다. 보이는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불안해 보여도, 하나님의 약속은 변함없다는 믿음의 선언입니다.

이런 찬양으로 시작하는 하루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하게 되고, 어려움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게 됩니다. 왜냐하면 내 인생의 결말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들꽃처럼 시들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무처럼 푸르고 풍성하게 서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시편 1편이 떠오릅니다. 시편의 첫 번째 시가 왜 이 주제로 시작하는지 이제 분명해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먼저 말씀하고 싶으셨던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너희는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느냐? 들꽃인가, 나무인가?"

시편 1편은
"주님이 인정하시는 행복한 의인"이 누구인지 정의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여기 핵심이 있습니다. 밤낮으로 묵상한다는 것은 단순히 성경을 많이 읽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마치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또 새기며 그것을 자기 삶의 양분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에 뿌리내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늘 푸르고 때가 되면 열매를 맺으며 언제나 형통합니다."

시냇가의 나무를 떠올려보세요. 주변이 가뭄으로 메말라도, 시냇가의 나무는 여전히 푸릅니다. 물이 끊임없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영혼의 시냇물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건조하고 각박해도, 말씀의 시냇가에 서 있는 사람은 마르지 않습니다.

이런 삶의 비밀을 알게 되면 자연스럽게 버려지는 것들이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따르거나 죄인의 길에서 방황하거나 오만한 자들과 당을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왜 사람들은 악인의 꾀를 따릅니까? 지름길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게 사는 것은 너무 더디고 손해 보는 것 같고, 약간의 타협과 편법이 훨씬 효율적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들꽃의 전략입니다. 빨리 피어나지만 빨리 시듭니다.

나무는 천천히 자랍니다. 조급해하지 않습니다. 매일 조금씩 뿌리를 더 깊이 내리고, 조금씩 더 튼튼해집니다. 눈에 띄지 않는 성장이지만, 어느 날 보면 훌륭한 나무가 되어 있습니다.

왜 사람들은 죄인의 길에서 방황합니까? 혼자서는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확신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님께 뿌리내린 사람은 방황할 필요가 없습니다. 갈 길이 분명합니다.

왜 사람들은 오만한 자들과 당을 짓습니까? 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영향력에 기대야 살아남는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다른 힘의 원천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뿌리내렸으니, 누구를 두려워하겠습니까?

결국 의인의 삶은 단순합니다.
"그저 늘 희망을 품고 살면서 '기쁘고 행복하다'고 노래하면 됩니다." 여기서 '희망'이라는 단어를 주목해보세요. 희망은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확신입니다. 나는 들꽃이 아니라 나무다. 시들지 않는다. 열매를 맺는다. 형통한다. 이것이 희망입니다.

이 희망을 품은 사람은 상황에 관계없이
'기쁘고 행복하다'고 노래할 수 있습니다. 기쁨이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확신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행복이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정체성에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많은 돈을 품고도 불안한 악인은 꿈도 못 꿀 그런 삶을 알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세상은 돈이 안정을 준다고 말합니다. 재산이 많으면 불안이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들이 오히려 더 불안해합니다. 잃을까 봐, 빼앗길까 봐, 충분하지 않을까 봐 두려워합니다.

반면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찾은 사람은 적게 가져도 평안합니다. 풍성한 진액이 내면에서 흐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생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게 됐다'는 것, 그것이 바로 다행입니다. 이것은 세상이 가르쳐주지 않는 지혜입니다. 경험으로 터득해야 하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분께 뿌리내리며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깨닫게 되는 비밀입니다.
"아, 내가 나무처럼 살고 있구나. 들꽃이 아니라 나무로 살고 있구나. 이것이 진짜 인생이구나."

이 깨달음과 함께 아침이 옵니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한번 노래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늘 푸른 나무로 살게 하신 은혜에 감사하며, 오늘도 열매 맺는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