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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일상의 평화를 위해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1.

“주여, 주는 대대손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12)

시편 90편은 시편 전체에서 유일하게 모세의 이름이 붙은 기도입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 시를 가볍게 읽을 수 없습니다. 모세는 궁궐에서 자랐지만, 인생의 대부분을 광야에서 보낸 사람입니다. 정착하지 못한 삶, 늘 이동해야 했던 삶, 하루 앞을 장담할 수 없는 나그네의 인생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린 기도가 바로 이 시편입니다.

모세의 기도에는 인생에 대한 냉정한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 년, 근력이 좋아야 팔십 년, 그나마 거의 다 고생과 슬픔에 젖은 것입니다.” “주께서 휩쓸어 가시면 인생은 한바탕 꿈과 같고,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과 같습니다.” 이 고백은 언뜻 들으면 지나치게 염세적으로 들릴 수도 있습니다. 마치 인생의 허무함을 한탄하는 노인의 독백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절망에서 나온 탄식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비로소 정직해진 인간의 언어입니다. 모세는 인생을 과장하지 않습니다. 의미를 부풀리지도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합니다. 인생은 짧고, 연약하고, 덧없습니다. 아무리 위대한 지도자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그저 한 줌의 티끌 같은 존재임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허무한 인생 고백보다 먼저 등장하는 한 문장입니다.
“주여, 주는 대대손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모세는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기 전에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먼저 고백합니다. 인생은 떠돌이였지만, 하나님은 늘 거처가 되셨다는 고백입니다. 이 고백이 있기 때문에, 시편 90편은 염세주의로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인생은 짧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십니다. 인간은 사라지지만,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이 대비가 시 전체를 지탱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 고백은 절실합니다.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안정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마음은 늘 불안합니다. 건강, 경제, 관계, 미래… 붙잡고 있던 것들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경험을 우리는 너무 자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두려워집니다. 내가 쌓아온 것이 이렇게 허무한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시편 90편은 하나님 앞에서 인생이 초라해지는 것은 비정상이 아니라 정상이라고 말합니다. 거룩한 절대자 앞에 서면, 인간은 작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그 작아짐을 두려움으로만 해석하느냐, 아니면 안식으로 받아들이느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작아졌지만,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안전해졌습니다. 왜냐하면 그 하나님이 심판자이기 이전에 거처를 예비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생을 휩쓸어 가시는 분이지만, 동시에 인생을 품으시는 분입니다. 이 두 가지를 함께 아는 것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이 기도는 오래 살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닙니다. 더 많은 것을 이루게 해 달라는 기도도 아닙니다. 남은 시간을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인생의 길이가 아니라, 인생의 방향을 묻는 기도입니다.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흘려보내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깨어 살기를 원하는 마음의 고백입니다.

그리고 기도의 끝에서 모세는 다시 은혜를 구합니다.
“아침마다 주의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만족하게 하소서.” “우리 손의 행사를 견고하게 하소서.” 인생의 허무를 아는 사람만이, 이 기도를 진심으로 드릴 수 있습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견고하게 만들 수 없다는 사실을 알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맡깁니다. 그리고 그 맡김 속에서 이상하게도 평안이 찾아옵니다.

시편 90편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인생을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무겁게 모시라는 초대입니다. 인생의 짧음을 인정할 때, 우리는 오히려 오늘을 소중히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작아질 때, 우리의 일상은 오히려 단단해집니다.

모세의 온유와 겸손은 타고난 성품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광야에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바로 보며 살아온 결과였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의 무게를 혼자 감당하려 하지 않을 때, 하나님을 우리의 거처로 삼을 때, 우리의 마음에도 온유와 평강이 강물처럼 흐르기 시작합니다.

오늘 하루도 여전히 짧고 연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의 거처이십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의 일상은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