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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인자와 성실 사이에서 흔들리는 신앙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5.

“내가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내 입으로 대대에 알게 하리이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와 진실이 주의 앞에 있나이다. 그러나 나의 인자함은 그에게서 다 거두지 아니하며 나의 성실함도 폐하지 아니하리로다. 내 언약을 깨뜨리지 아니하고 내 입술에서 낸 것은 변하지 아니하리로다.”(시편 89:1,14,33,34)

시편 89편을 관통하는 두 단어는
“인자”“성실”입니다. 그리고 그 둘을 묶는 것은 “언약”입니다. 이 시편은 단순한 찬양시가 아닙니다. 찬양으로 시작하지만, 탄식으로 끝나는 독특한 구조를 가집니다. 그 이유는 이 시편이 하나님의 성품과 인간의 현실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자리에서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는 먼저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을 내가 영원히 노래하며, 주의 성실하심을 대대로 알게 하리이다.” 여기서 ‘인자’는 단순한 친절이나 호의가 아닙니다. 이는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 히브리어로 ‘헤세드’라 불리는 사랑입니다. 사람의 태도, 공로, 실패에 따라 바뀌는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게서 나오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성실’은 그 사랑을 끝까지 밀고 가시는 하나님의 태도입니다. 약속하셨다면 반드시 이루시는 자세, 뒤로 물러서지 않는 신실함입니다.

시편 기자는 이 인자와 성실이 단지 추상적인 신학 개념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실제로 증명된 하나님의 성품임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통해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는 모세 언약, “네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는 다윗 언약, 이스라엘의 역사는 결국 이 두 언약이 인자와 성실로 지켜져 온 이야기입니다.

인간은 수없이 실패했지만, 하나님은 실패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존재했고, 우리도 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입니다. 시편 89편은 중반 이후 갑자기 방향을 틉니다. 시편 기자는 현실을 바라봅니다. 다윗의 왕위는 흔들리고, 나라는 무너지고, 언약의 표지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거의 항변하듯 묻습니다.
“주께서 어찌하여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버리셨나이까?”

이 질문은 불신앙의 질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언약을 너무 진지하게 붙든 자의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인자와 성실의 하나님이라면, 지금 이 현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합니까? 이 질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며 종종 이런 지점에 섭니다. 말씀은 분명한데 현실은 다르고, 약속은 선명한데 삶은 무너져 있습니다.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고, 순종했는데 길이 막힙니다. 이때 우리는 쉽게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의심하게 됩니다.

그러나 시편 89편은 다른 방향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문제는 하나님의 성품이 변했는가가 아니라, 언약 안에서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가입니다. 언약은 일방적인 약속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나 관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지만, 인간은 변합니다. 그래서 언약의 축복은 하나님 편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지만, 인간 편에서는 성실로 붙드는 삶을 요구받습니다. 시편 기자가 고난의 현실을 해석하는 방식은 단순합니다.
“하나님이 인자하지 않으신가?”가 아니라 “우리가 인자와 성실 안에 서 있는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고난으로 돌이키십니다. 실패와 상실, 고독과 흔들림을 통해 언약을 가볍게 여긴 마음을 깨우십니다. 그것은 벌이라기보다 회복을 위한 아픔인 것입니다.

시편 89편 후반부에 흐르는 탄식은 절망이 아니라, 하나님께 다시 매달리는 몸부림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인자와 성실을 자신의 속성으로 가지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언약을 깨뜨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버리고 새 판을 짜지 않으십니다. 대신 아프게 해서라도 다시 언약 안으로 부르십니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의 마음도 아프십니다. 그러나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인자와 성실의 하나님께는 인자와 성실을 회복시키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은혜를 소비하고 있는가, 언약을 살고 있는가? 하나님의 인자를 말하면서, 우리의 삶은 성실한가? 결국 시편 89편은 이렇게 우리를 결론으로 이끕니다. 회개만이 길입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것, 다시 언약 앞에 서는 것, 인자와 성실로 살아내겠다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다른 대안은 없습니다.

신앙의 길은 언제나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흔들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십니다. 오늘도 우리는 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살 길은 하나입니다. 인자와 성실의 하나님을 다시 붙드는 것, 그리고 그 성품을 닮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시편 89편은 그 길 외에는 없다고, 아주 길게, 그러나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