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의 터전이 성산에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야곱의 모든 거처보다 시온의 문들을 사랑하시는도다. 하나님의 성이여 너를 가리켜 영광스럽다 말하는도다(셀라). 나는 라합과 바벨론이 나를 아는 자 중에 있다 말하리라 보라 블레셋과 두로와 구스여 이것들도 거기서 났다 하리로다. 시온에 대하여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말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하는도다. 여호와께서 민족들을 등록하실 때에는 그 수를 세시며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시리로다(셀라).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시편 87: 1~7)
사람에게는 누구나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태어난 곳이 아니더라도, 삶이 지치고 흔들릴 때 돌아가고 싶은 자리, 나를 나 되게 하는 근원이 되는 장소가 있습니다. 시편 87편은 바로 그런 “신앙의 고향”을 노래합니다. 그 고향은 특정 민족이나 혈통이 독점하는 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시온입니다.
“시온을 두고 말하기를, ‘이 사람, 저 사람이 거기서 났다’ 하리니 지존자가 친히 시온을 세우리라.” 이 고백은 놀랍습니다. 왜냐하면 시온은 원래 이스라엘의 중심이었지만, 시편 기자는 과감하게 그 경계를 허뭅니다. 라합(이집트), 바벨론, 블레셋, 두로, 구스와 같은 이방 민족들까지도 “시온에서 난 자”로 선언합니다. 혈통과 국경, 문화와 언어의 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모든 이가 하나의 고향을 갖게 되는 순간입니다.
이 장면을 보면, 시온은 마치 어머니와 같습니다. 어머니는 자녀의 출신과 조건을 따지지 않습니다. 아픈 아이든, 실패한 아이든, 돌아오기만 하면 품어 줍니다. 시온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시고, 친히 “이 사람이 거기서 났다”고 선언하십니다. 신앙은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 낸 이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출생의 사건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는 이 시온의 노래가 현실이 되는 자리였습니다. 유대인과 헬라인, 종과 자유인, 남자와 여자가 한 식탁에 앉는 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선포된 통전적 복음은 그 모든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다른 배경을 가졌지만,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 것입니다. 신앙의 고향이 하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쉽게 다시 좁아집니다. 사도행전 1장에서 제자들은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니이까?” 그들의 관심은 여전히 자기 민족의 회복, 자기 나라의 독립, 자기들의 안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마치 큰 바다를 앞에 두고도, 작은 연못을 지키는 데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 같았습니다.
이 모습은 오늘 우리의 모습과 같습니다. 우리는 종종 신앙을 통해 우리 자신의 왕국, 우리 자신의 문제 해결, 우리 자신의 형통을 기대합니다. 교회 역시 “우리 교회가 잘되는 것”, “우리 공동체의 안전”이라는 울타리 안에 머물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좁은 관심에서 우리를 불러내십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한 시골 교회가 있습니다. 재정도 넉넉하지 않고, 성도 수도 많지 않은 교회였습니다. 어느 해, 그 교회는 선교 보고 영상을 통해 난민 캠프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삶을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리 형편에 무슨 해외 선교인가.” 그러나 기도 가운데 한 가지 고백이 생겨났습니다.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그 이후 그 교회는 매달 작은 헌금을 모아 아이 한 명을 후원하기 시작했고, 몇몇 성도는 직접 그 땅을 방문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교회는 커지지 않았지만, 비전은 분명히 넓어졌습니다. 성도들의 신앙은 더 이상 교회 건물 안에 갇혀 있지 않았고, 하나님의 정의와 자유, 평화를 향해 숨 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시온의 노래가 오늘 교회 안에서 다시 불려지는 방식인 것입니다.
시편 87편의 마지막 절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노래하는 자와 뛰어 노는 자들이 말하기를 나의 모든 근원이 네게 있다 하리로다.” 이 고백은 단순한 감정 표현이 아닙니다. 삶의 방향 선언입니다. 나의 정체성, 나의 소속, 나의 미래가 더 이상 혈통이나 성취, 국가나 제도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온의 백성은 언제든 경계를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본향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는 다시 이 질문 앞에서 고민해야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자신의 왕국”을 붙들고 있는지, 아니면 시온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더 큰 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를 말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성령의 권능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의 작은 관심에서, 우리의 좁은 안전지대에서, 땅 끝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선교 속으로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에 응답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신앙의 고향은 하나이며, 그곳에서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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