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여 신들 중에 주와 같은 자 없사오며 주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나이다. 그러나 주여 주는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푸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와 진실이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오니"(시편 86: 8, 15)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기대하며 살아갑니다. 사랑하면 사랑받고 싶고, 존경하면 존경받고 싶습니다. 섬기면 섬김을 받고, 대접하면 대접받기를 은근히 바랍니다. 이것은 인간으로서 너무도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그래서 세상은 늘 계산합니다. 얼마를 주면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 어디까지 헌신하면 어느 정도 인정받을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가 노래한 사랑은 전혀 다른 차원의 사랑입니다. 그는 말합니다. 사랑하되 사랑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 존경하되 존경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 섬기되 섬김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 대접하되 대접받으려 하지 않는 사람이 복되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자리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 사랑을 “장한 사랑”이라 노래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원형, 그 완전한 모습은 오직 한 분, 주님에게서만 발견된다고 고백합니다.
시편 86편에서 시편 기자는 깊은 곤고함 가운데 기도합니다. 그의 기도는 넉넉한 사람의 여유 있는 기도가 아니라, “가난하고 궁핍한 자”의 절박한 부르짖음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 어떤 조건도 내걸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했으니 이렇게 해달라”는 계산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고백할 뿐입니다.
“주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신 하나님이시요,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과 진실이 그지없으신 분이십니다.”(시 86:15, 새번역) 이 고백은 하나님이 대가를 보고 응답하시는 분이 아님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주님의 응답은 인간의 공로 때문이 아니라, 주님의 성품, 곧 은혜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해서가 아니라, 주님이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주님은 가난한 기도에도 응답하십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감히 이렇게 외칩니다. “주님, 신들 가운데 주님과 같은 신이 어디에 또 있습니까? 주님이 하신 일을 어느 신이 하겠습니까?”(시 86:8, 새번역) 이 질문은 비교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확신의 고백입니다. 세상의 어떤 신도, 어떤 가치도, 어떤 원리도 이런 사랑을 보여준 적이 없다는 선언입니다.
대가 없는 은혜, 조건 없는 긍휼, 보상 없는 사랑은 오직 주님만이 보여주신 사랑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신앙인에게 이 고백은 매우 실제적인 도전이 됩니다. 우리는 여전히 사랑하면서도 상처받기를 두려워하고, 섬기면서도 알아주지 않으면 낙심하며, 대접하면서도 감사받지 못하면 서운해합니다.
그러나 시편은 우리를 다른 자리로 초대합니다. 사랑의 결과가 아니라,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리로 말입니다. 하나님을 이렇게 아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랑인지를 믿는 사람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그 사랑이야말로 환난 날을 이겨내는 힘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상황이 바뀌지 않아도, 사람이 변하지 않아도, 내가 알아주지 못함을 당해도 무너지지 않는 이유는 이미 충분히 사랑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계산 없는 사랑을 받은 사람은 더 이상 세상의 보상에 매달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래서 주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사랑하되 사랑받으려 하지 않고, 섬기되 섬김받으려 하지 않으며, 대접하되 대접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장해서가 아니라, 이미 장한 사랑 안에 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장한 사랑의 원형, 그 사랑의 시작과 완성은 오직 주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사랑은 가난하고 궁핍한 우리의 기도 위에 아무 조건 없이, 은혜로만 부어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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