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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하나님을 보고 듣는 법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11.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맞추었으며,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 의는 하늘에서 굽어보도다."(시편 85:10~11)

우리는 종종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하나님은 지금 무엇을 말씀하고 계실까?” 대부분의 신앙인은 하나님을 보는 법과 듣는 법을 특별한 계시나 초자연적인 체험 속에서 찾으려 합니다. 그러나 영성 작가 켄 가이거는 전혀 다른 방향을 제시합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웃을 보고 듣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면, 어쩌면, 정말 어쩌면, 하나님을 보고 듣는 법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왜 그럴까요? 이유는 단순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애정을 가지고 만드신 존재이며, 피조물 가운데서도 가장 성스러운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십니다. 그래서 이웃의 신음과 눈물을 외면한 채 하나님만 찾겠다는 태도는, 사실 하나님을 향한 길에서 이미 빗나간 것일지도 모릅니다.

시편 85편을 기록한 시편 기자는 고라 자손입니다. 그는 예배자의 집안 출신이었지만, 이 시를 쓸 당시 그는 성전의 평온함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민족은 무너졌고, 땅을 잃었으며, 그는 난민의 처지에 놓여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빼앗긴 자리에서 그는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는 처음부터 하나님을 향한 신학적 선언이 아닙니다. 그것은 민족의 비참함을 끌어안은 탄식에서 시작됩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히 노하시며, 대대로 노여움을 품고 계시렵니까?” “주님의 백성이 주님을 기뻐하도록 우리를 되살려 주시지 않겠습니까?” 이 질문 속에는 절망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질문은 하나님의 마음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다는 신앙의 고백입니다. 시편 기자는 단순히 하나님의 진노만을 느낀 것이 아닙니다. 그는 그 진노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고독함까지 보게 됩니다. 백성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상처 입은 쪽은 인간만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었음을 그는 깨닫습니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변합니다. 처음에는
“우리를 살려 달라”는 민족 중심의 간구였지만, 점점 “주님을 기쁘시게 해 달라”는 하나님 중심의 기도로 깊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보고 듣게 된 사람의 변화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게 되면, 우리의 기도는 더 이상 ‘내 문제 해결’에 머물지 않습니다.

시편 85편의 절정은 이 고백에 있습니다.
“사랑과 진실이 만나고, 정의는 평화와 서로 입을 맞춘다.” 이것은 단순히 나라가 회복되는 장면이 아닙니다. 정치적 독립이나 경제적 회복을 넘어서는 하나님 나라의 회복에 대한 환상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회복될 때, 사랑과 진실은 분리되지 않고, 정의와 평화는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시편 기자가 바라본 참된 구원인ㅁ것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도 다르지 않습니다. 개인의 삶은 불안하고, 공동체는 분열되어 있으며, 사회와 민족은 깊은 상처를 안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시편 85편은 이렇게 속삭입니다. “너는 정말 보고 듣고 있느냐?” 이웃의 고통을 깊이 바라보고, 형제의 탄식을 귀 기울여 듣는 자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만나게 됩니다.

그때 우리의 기도는 자연스럽게 달라집니다. 나의 안락함을 위한 기도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기도로 옮겨 갑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이웃을 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의 소리를 듣는 것이 하나님을 보고 듣는 신비한 통로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경험하게 됩니다. 주님의 뜻과 우리의 사랑이 하나로 맞닿는 순간을 말입니다.
"아, 하나님을 이렇게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벅찬 은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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