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여 일어나사 세상을 심판하소서 모든 나라가 주의 소유이기 때문이니이다"(시편 82:8)
우리는 너무 자주 사람에게 기대를 겁니다. 권력 있는 이에게, 정의를 말하는 제도에게, 올바른 결정을 내려줄 것이라 믿고 싶은 지도자에게 희망을 겁니다. 그러나 그 기대는 반복해서 무너지고, 그 실망은 우리를 더 깊은 허무로 끌어내립니다.
시편 82편은 바로 이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이 시는 개인의 내면적 탄식이 아니라, 세상의 권력과 구조를 향한 하나의 심판가(審判歌) 입니다. “언제까지 너희는 공정하지 않은 재판을 되풀이하려느냐? 언제까지 너희가 악인의 편을 들려느냐?”(2절) 이 질문은 단순한 도덕적 훈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신적 권세’를 위임받은 자들, 다시 말해 재판하고 다스리며 결정할 책임이 있는 이들을 향한 고발인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신화적인 언어를 빌려 말하지만, 그 메시지는 놀랍도록 현실적입니다.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 서 계시며, 그들의 판단을 직접 심문하십니다. 권력은 인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위임된 것이기에, 그 사용에 대한 책임 또한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기준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단순하고 분명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고아를 변호해 주고, 가련한 사람과 궁핍한 사람에게 공의를 베풀어라. 가난한 사람과 빈궁한 사람을 구해 주어라. 그들을 악인의 손에서 구해 주어라.”(3~4절)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정의는 추상적인 이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늘 가장 약한 이들을 향해 있습니다.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목소리를 잃은 자들,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들, 시스템 속에서 쉽게 희생되는 이들을 어떻게 대했는가가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정의는 말이 아니라 편에 서는 것이며, 자비는 감정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권세를 맡은 자들이 “깨닫지 못한 채 흑암 중에 왕래”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알지 못하기에 두려움도 없고, 책임의식도 없습니다. 그 결과, “땅의 모든 터가 흔들리는” 혼란이 찾아옵니다. 정의가 무너질 때 사회는 기반부터 흔들립니다. 이는 단지 고대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가 최근까지 겪어온 사회적 혼란과 불안, 반복되는 실망의 역사와도 깊이 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권력자들을 향해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신들이라 불렸지만, 너희도 사람처럼 죽을 것이요, 고관들 가운데 하나처럼 쓰러질 것이다.”(6~7절 요지) 아무리 높아 보여도, 아무리 견고해 보여도,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 유한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더 이상 사람에게서 구원을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같은 실망을 반복하며 권력을 향해 희망을 거는 일은 지혜롭지 않습니다. 사람은 구원의 근원이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은 마지막에 이렇게 기도합니다.“하나님, 일어나셔서 이 세상을 재판하여 주십시오. 온 나라가 하나님의 것입니다.”(8절) 이 기도는 절망의 외침이 아니라 믿음의 고백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선언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이 최고의 심판자이심을 인정하는 신앙의 표현입니다. 신앙인은 현실을 외면하지 않지만, 현실에 최종 권위를 주지도 않습니다. 기대와 희망의 방향을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계속해서 사람에게 기대고, 다시 실망할 것인가, 아니면 생명과 자비가 제자리를 찾도록, 정의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것인가, 시편 82편은 우리에게 분명히 기대도, 희망도 오직 그분을 향해 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일어나셔서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이시며, 그분의 정의는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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