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군의 하나님이여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시편 80:14)
시편 80편에는 이름들이 등장합니다. 요셉, 에브라임, 베냐민, 므낫세, 한때는 찬란했던 이름들이지만, 시편이 기록될 당시 이 이름들은 이미 역사 속에서 사라진 지파들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그 이름들을 다시 불러냅니다. 잊히지 않기를 바라듯, 상처 난 기억을 더듬듯, 하나님 앞에 그 이름들을 올려놓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을 한 그루 포도나무로 기억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친히 옮겨 심으시고, 가나안 땅에 자리를 잡게 하신 나무입니다. 돌을 치우고 뿌리를 깊이 내리게 하셔서, 한때는 산들을 덮고 지중해까지 그 가지가 뻗어 나갔던 크고 풍성한 나무였습니다. 그 나무는 하나님의 손길로 자라난 생명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시편 기자가 바라보는 현실은 참혹합니다. 울타리는 무너졌고, 지나가는 자마다 가지를 꺾어 갑니다. 들짐승이 짓밟고, 불에 타고, 베임을 당합니다. 시편 기자는 이 멸망을 우연이나 단순한 재난으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분노로 말미암아” 그렇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음을 인정하는 고통스러운 신앙의 고백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울부짖습니다. “만군의 하나님, 우리에게 돌아오십시오.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아 주십시오.” 이 기도는 회복의 조건을 나열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무엇을 더 잘하겠다는 다짐도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다시 보아 주시기를, 다시 함께해 주시기를 간구할 뿐입니다.
신앙의 회복은 언제나 하나님 쪽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시편 기자는 알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포도나무 가지의 사명은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가지는 그저 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 사명입니다. 붙어 있으면 수액은 흐르고, 생명은 전달되며, 열매는 때가 되면 맺힙니다. 그러나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모양이 그럴듯해 보여도 그 가지는 이미 죽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이 말씀은 열매를 강요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성과를 내라는 명령도 아닙니다. 거하라, 붙어 있으라는 초대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신앙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자주 열매에 집착합니다. 얼마나 잘 믿는지, 얼마나 헌신하는지, 얼마나 변화되었는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습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정작 포도나무이신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지는 잊어버린 채, 가지 혼자 버티고 있으려 합니다. 그 결과는 늘 같습니다. 메마름과 탈진, 그리고 이유 없는 영적 소진입니다.
시편 80편의 포도나무는 경고이자 동시에 위로입니다. 붙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하나님이 심으신 나무라 해도 쇠할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시 돌아오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회복의 길이 아직 닫히지 않았다는 위로입니다. 시인은 멸망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기도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마지막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도, 나도 포도나무의 가지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신앙적인 일은 더 애쓰는 것이 아니라, 다시 붙는 것입니다. 말씀 앞에, 십자가 앞에, 은혜 앞에 가만히 머무는 것입니다. 붙어 있으면 삽니다. 붙어 있으면 다시 흐릅니다. 그리고 열매는, 반드시 그분의 때에 맺힙니다. 그저 잘 붙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시편'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기대도, 희망도 그분을 향해 (1) | 2025.12.28 |
|---|---|
| 우리의 힘도 주님뿐 (0) | 2025.12.28 |
| 죽음의 자리에서 배우는 믿음 (0) | 2025.12.21 |
| 역사의 주님과 함께 걷는 사람들 (0) | 2025.12.20 |
|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하나님을 배우다 (0) | 2025.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