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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다시 하나님을 배우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4.

“지존자의 오른손의 해 곧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며 주께서 옛적에 행하신 기이한 일을 기억하리이다.”(시편 77:10–11)

시편은 신앙의 교과서라기보다 신앙인의 일기장에 가깝습니다. 시편 기자들은 정답을 말하기보다, 자신이 살아내고 부딪히고 무너졌던 자리에서 만난 하나님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시편에는 믿음의 확신만큼이나 흔들림과 혼란, 오해와 질문이 가감 없이 담겨 있습니다. 시편 77편 역시 그런 시입니다. 이 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이기 전에,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해 괴로워하던 한 신앙인의 내면 기록입니다.

아삽은 77편의 첫머리에서 익숙한 신앙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
내가 내 음성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리니… 내게 귀를 기울이시리로다.” 이 말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입니다. 부르짖으면 들으시는 하나님,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하나님, 아삽 역시 그렇게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삶이었습니다. 환난의 날에 하나님을 찾았지만, 밤새도록 손을 들고 부르짖었지만, 그의 영혼은 위로를 받지 못했습니다. 기도했음에도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고, 근심은 오히려 심령을 상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면 위로가 되기보다 더 괴로워졌습니다. 밤은 깊어가는데 잠은 오지 않고,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만 쌓여 갔습니다.

이 장면은 낯설지 않습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같은 자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하면 마음이 평안해져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기도하면 문제가 해결되거나, 적어도 위로는 받아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기도했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때,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우리는 당황합니다. 혹시 내가 잘못 기도했나, 믿음이 부족한가, 하나님이 나를 외면하신 건 아닐까. 그렇게 신앙은 점점 불안과 자책의 자리로 흘러갑니다.

아삽도 그 지점에 서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영원히 버리신 것은 아닌지, 은혜를 거두신 것은 아닌지, 긍휼을 잊으신 것은 아닌지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이것은 불신앙의 말이라기보다, 침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더 이상 숨길 수 없어진 정직한 고백입니다. 신앙이 깊어질수록 질문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본질적인 질문으로 바뀔 뿐입니다.

그런데 시편 77편은 그 질문 속에서 멈추지 않는다. 전환점은 10절에서 시작됩니다. “
또 내가 말하기를 이는 나의 잘못이라.” 아삽은 상황을 바꾸지 않고, 하나님을 바꾸지 않습니다. 대신 자신의 하나님 이해를 돌아봅니다. 그가 깨달은 잘못은 기도를 하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부르짖으면 즉각 반응하여 문제를 해결해 주는 분’으로만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그 침묵을 하나님의 부재로 해석해 버렸습니다.

아삽은 시선을 옮깁니다. 자신의 현재 문제에서, 하나님이 옛적에 행하신 일로, 그는 여호와의 일들을 기억하기로 합니다. 이 기억은 감정적인 위안이 아니라 신앙의 재정렬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다시 배우는 과정입니다.

아삽이 기억한 하나님의 기이한 일은 출애굽의 하나님입니다. 바다를 가르시고, 길 없는 곳에 길을 내시고, 발자취는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백성을 인도하셨던 하나님. 그 길은 언제나 인간의 이해를 넘어섰고, 눈에 보이는 방식으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침묵 속에서도 일하고 계셨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고백이 나옵니다. “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발자취를 알 수 없었나이다.” 하나님의 길은 분명 존재하지만, 인간은 그 발자국을 따라 그릴 수 없습니다. 우리는 결과로만 하나님의 일을 인식할 뿐, 그 과정은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주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아삽은 마침내 고백합니다. “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이 누구이까.” 이 고백은 문제가 해결되어서 나온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다시 알게 되었기 때문에 나온 고백입니다. 침묵하시는 하나님도 여전히 거룩하시고, 이해되지 않는 길을 가시는 하나님도 여전히 위대하시다는 깨달음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도 이 자리로 초대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문제 해결을 위해 하나님을 찾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문제 너머의 세계로 부르십니다. 이미 행하신 기이한 일, 곧 우리를 사망에서 불러내어 그리스도 안으로 옮기신 그 은혜의 세계 안에 우리가 서 있다는 사실을 보게 하십니다.

우리가 지금도 예수를 주로 고백하며 살아간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의 기이한 일 안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침묵처럼 느껴지는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비록 발자취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묵상은 이렇게 끝납니다. 기도해도 위로되지 않을 때, 하나님을 바꾸려 하지 말고 하나님을 다시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의 침묵을 부재로 오해하지 말고, 그분이 이미 행하신 기이한 일을 바라보십시오. 그때 우리는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여전히 생명의 능력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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