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여 주께서 어찌하여 우리를 영원히 버리시나이까 어찌하여 주께서 기르시는 양을 향하여 진노의 연기를 뿜으시나이까”(시편 74:1)
예루살렘이 무너졌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머물던 성전마저 불타 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자랑하던 영광의 상징,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던 그 성소가 짓밟히고 폐허가 된 것입니다. 시편 74편의 시편 기자는 바로 이 참담한 현실 앞에서 깊은 탄식을 쏟아냅니다.
그런데 그가 가장 먼저 묻는 것은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닙니다.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거나, 주변 강대국의 군사력을 탓하지도 않습니다. 그의 질문은 단 하나입니다. “주님, 어찌하여 우리를 버리셨나이까?” 시편 기자의 시선은 철저히 하나님과의 관계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나라가 무너지고 민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며, 그는 정치‧군사적 원인보다 영적 원인을 먼저 묻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은 아닌가? 우리를 향한 주님의 은혜가 거두어진 것은 아닌가?’ 그는 이 질문이야말로 가장 본질적인 질문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민족적 참화를 눈앞에서 보게 되었을 때, 시편 기자의 영혼은 새벽처럼 깨어납니다. 흔들리는 역사 속에서 그는 비로소 변하지 않는 하나님을 바라봅니다. 그는 상처 입은 마음으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주님, 시온은 주님의 거처였습니다. 잊지 마소서.” “우리를 무너뜨린 자들은 짐승 같은 자들입니다. 저들이 어찌 주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입니까?” “주님은 옛날부터 우리의 왕이시며 구원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시편 기자는 과거의 은혜를 기억함으로써 하나님을 붙듭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들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는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의 옷자락을 붙잡고 울부짖듯 간구합니다.“주님, 일어나소서. 우리를 도우소서. 당신의 백성을 잊지 마소서.” 민족의 아픔이 시편 기자에게 신앙의 정신을 전율하듯 일깨운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고난 앞에서 허둥대고, 마음이 조급해지고, 자기중심적인 원망으로 흘러가기 쉽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 기자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고난이 그의 믿음을 흔든 것이 아니라, 고난이 오히려 그의 믿음을 더 분명히 드러내게 했습니다. 평소에는 흐릿해지고 당연하게 여기던 은혜가 고난 앞에서 다시 빛을 발합니다.
예전에는 마음으로만 알던 ‘하나님이 왕이시다’라는 고백이 민족이 무너지는 순간, 생명줄처럼 그의 영혼을 붙잡습니다. “아, 이스라엘의 신앙의 기초는 여전히 견고했구나.” 이 시편을 묵상할 때마다 드는 생각입니다. 비록 환난이 일어나기 전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그 환난이 찾아왔을 때 그들은 결국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살고 있습니까? 이 민족이 경제적‧사회적‧정치적 격변 속에서 흔들리고 있는 시대입니다. 분열, 불안, 가치관의 혼란, 도덕적 쇠퇴, 영적 어둠…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돌리고 있는가? 혹은 뉴스를 분석하고 사람을 탓하고 사회 구조만 비난하며, 정작 하나님 앞에서는 침묵하고 있지는 않은가?
민족의 고난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큰 일,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리기 쉬운 일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습니까?” “하나님, 우리의 죄를 돌아보게 하소서.” “하나님, 이 민족을 긍휼히 여겨 주소서.” 세상은 원인을 진단하고 전략을 세우지만, 믿음의 사람은 먼저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문제의 근원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우리의 중심에 모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를 낮추시고 깨우시며, 잃어버린 방향을 다시 잡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스라엘이 폐허를 본 그날, 시인은 무너진 성벽과 타들어가는 성전을 바라보며 오히려 하나님을 더욱 분명히 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도 다르지 않습니다. 민족의 위기와 개인의 어려움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울부짖는 것입니다. 고난은 우리를 절망시키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신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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