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적을 전파하리이다."(시편 73:25,28)
우리는 모두 한 번쯤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질문을 던져본 적이 있습니다. “왜 악한 사람은 잘되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는 나는 고난 속에 머물러야 하는가?” 시편 73편의 시인 아삽도 바로 그 자리에서 탄식했습니다. 그는 믿음이 흔들릴 만큼 현실이 모순되어 보였고, “거의 미끄러질 뻔했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기가 너무 어려워 보이는 순간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열심히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인정받지 못하고, 편법과 거짓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오히려 더 잘되는 듯 보입니다. 신앙의 길을 걷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이 충돌과 혼란을 경험하게 됩니다.
한 번은 빌리 그래함 목사가 호주에 갔을 때의 일이라고 합니다.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그는 기사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운전기사는 냉소적으로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세상이 이렇게 불공평할 수 있습니까? 착한 사람은 고통당하고, 악한 놈은 잘 살아가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어요?”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도 잠들기 전, 혹은 마음이 무너지는 날, 조용히 이런 불평을 중얼대지 않나요? “하나님, 왜입니까? 왜 저 사람은 잘되는데 나는 이 고난 속에 있어야 하나요?”
그 질문 앞에서 그래함 목사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형제님, 그것은 하나님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의 책임입니다.” 세상의 부패와 고통, 죄의 흐름은 하나님이 만들어놓은 것이 아니라 인간이 선택해 온 결과라는 뜻입니다. 그 말은 곧, 불의한 현실이 하나님의 부재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타락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73편의 시인은 이러한 모순을 끝까지 해석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는 답답합니다. 마음은 흔들립니다. 이해되지 않는 현실이 너무 크게 다가옵니다. 그런데도 시인은 ‘현실의 수수께끼를 풀어야 믿음이 선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이 모든 모순을 설명하려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이것을 내가 겪는 고난으로 받아들이고, 주님을 바라보겠습니다.”
인생이 풀리지 않을 때, 우리는 흔히 하나님께 설명을 요구합니다. “이유를 알려주세요. 납득하게 해주세요.”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원하시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신뢰입니다. 시인은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머무는 동안 비로소 자신의 흔들림에서 벗어납니다. 현실은 그대로인데, 그의 마음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순간, 악인의 번영이 부러움이 아니라 잠깐 스쳐 지나가는 안개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는 마침내 이 한마디 고백에 이르게 됩니다. “하늘에서도 주님밖에 누가 더 있겠습니까? 땅에서도 주님밖에 내가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시 73:25) 세상이 아무리 복잡하고 불공평해 보여도, 고난이 길고 불빛 하나 보이지 않는 터널을 지나고 있어도, 결국 우리에게 진짜 남는 것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세상이 주는 번영은 오래 가지 않는다. 악인의 성공은 영원하지 않다. 내가 붙들 수 있는 힘도, 명예도, 안전도 모두 사라지는 날이 온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히 나의 몫이 되시고, 나의 반석이 되신다." 아삽은 현실이 나아져서 이 고백을 한 것이 아닙니다. 상황은 여전히 불공평합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변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기로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길은 언제나 이해보다 신뢰를 먼저 요구합니다. 설명되지 않는 고난 앞에서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현실을 원망하며 마음을 돌릴 것인가? 아니면, 이해되지 않아도 하나님 곁에 머물 것인가? 시인은 말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있음이 내게 복이라.”(28절) 이 복은 눈에 보이는 번영도, 눈앞의 문제 해결도 아닙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진실을 잃지 않는 것, 그게 바로 성도의 복입니다.
우리의 삶에는 여전히 의문이 많고, 보는 것마다 모순투성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모순을 제거하는 능력이 아니라, 모순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게 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아삽처럼 고백할 수 있습니다. “주님밖에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힘이요, 나의 기업이십니다.” 오늘 우리의 걸음이 막히고 답답할지라도, 하나님께 가까이 머무는 그 자리에서 다시 힘을 얻고, 방향을 얻고, 소망을 얻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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