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이여 침묵하지 마소서, 하나님이여 잠잠하지 마시고 조용하지 마소서.”(시편 83:1)
시편 83편은 조용히 읽을 수 있는 시가 아닙니다. 이 시는 속삭임이 아니라 절규이며, 명상이 아니라 부르짖음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정중하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다급하게 매달립니다. “주님, 제발 침묵하지 마소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이 멀리 계신 것처럼 느낄 때가 있습니다. 세상은 시끄럽게 돌아가고, 권력은 제멋대로 행사되며, 악은 당당하고 의인은 침묵을 강요당합니다. 그런 순간에 시편 83편은 우리의 마음을 대신 말해 줍니다.
시편 기자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적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열거합니다. 에돔, 모압, 암몬, 아말렉, 블레셋, 두로, 앗시리아, 이는 단순한 민족 목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지우려는 연합, “이스라엘의 이름을 다시는 기억되지 않게 하자”는 집단적 악의 선언입니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불편함을 느낍니다. “그럼 이스라엘 외에는 다 쫓겨나야 하는가?” “이것이 배타적 신앙은 아닌가?”
그러나 시편은 교리가 아니라 기도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구원론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지금 무너질 것 같은 현실 앞에서 하나님께 매달리는 한 사람입니다. 이 시는 타인을 배제하자는 선언이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는 교만과 폭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신앙의 저항인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그들을 굴러가는 검불 같게 하시며 바람에 날리는 지푸라기 같게 하소서.”(13절) 이 표현은 잔인한 복수의 언어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검불과 지푸라기는 가벼움의 상징입니다. 지금은 단단해 보이고, 견고해 보이며, 영원할 것 같은 권력도 하나님의 숨결 앞에서는 한순간에 흩어질 존재라는 고백입니다.
시편 기자는 스스로 칼을 들지 않습니다. 자신이 심판자가 되겠다고 나서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비폭력적인 저항입니다. 기도는 연약한 자의 무기이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시편 83편은 우리에게 한 가지 중요한 기준을 제시합니다. 만약 기도가 나의 이익, 나의 안전, 나의 독점적 평안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종교적 독백, 더 나아가 우상숭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편의 기도는 다릅니다. “여호와라 이름하신 주만이 온 세계의 지존자로 알게 하소서.”(18절) 시편의 목적은 단순히 적들이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드러나는 것, 하나님의 정의가 만백성 가운데 알려지는 것입니다. 악이 무너지는 이유는 의인이 편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가 드러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적은 반드시 특정 민족이나 사람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구조, 진리를 조롱하는 문화, 하나님을 필요 없다고 말하는 교만한 사상일 수 있습니다. 그 앞에서 신앙인은 쉽게 두 가지 길로 흔들립니다. 하나는 침묵하며 타협하는 길, 다른 하나는 분노로 맞서 싸우는 길입니다.
시편 83편은 제3의 길을 보여 줍니다. 기도로 하나님께 맡기는 길입니다. “주님, 교만한 권력을 꾸짖으시고 저들의 악한 뜻을 꺾어 주십시오.” 이 기도는 복수가 아니라 신뢰이며, 체념이 아니라 소망이며, 패배가 아니라 믿음의 고백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그 침묵을 깨우는 기도를 멈추지 마십시오. 기도하는 자는 약해 보이지만, 그 기도 안에는 하나님의 정의를 세상에 초대하는 힘이 있습니다. “주님, 침묵하지 마소서.” 이것은 절망의 외침이 아니라,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는 자의 믿음의 고백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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