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야로 주 앞에 부르짖었사오니, 곤란으로 말미암아 내 눈이 쇠하였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매일 주를 부르며 주를 향하여 나의 두 손을 들었나이다."(시편 88:1,9)
사람이 가장 약해질 때는 언제일까요? 몸이 아플 때, 마음이 외로울 때, 세상이 갑자기 너무 크고 무섭게 느껴질 때,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잘못했고 그 결과가 두려울 때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본능처럼 한 사람을 떠올립니다. 따지지 않고, 계산하지 않고, 이유를 묻지 않고 나를 받아 줄 사람은 바로 엄마입니다. 엄마가 있다는 것은 해결책이 있다는 뜻이 아닐지 모릅니다. 문제는 그대로 있고, 상황은 나아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울 수 있는 곳, 하소연할 수 있는 곳, 버림받지 않는 자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진짜로 죽을 만큼 힘들어서 부르는 소리일 수도 있고, 지나고 보면 어리광에 불과했던 투정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구분하지 않습니다. “그게 진짜 힘든 일이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냥 품을 엽니다.
시편 88편에 등장하는 탄식은 바로 그런 울음입니다. 이 시편은 다른 시편들과 달리 끝까지 어둡습니다. 희망의 고백으로 마무리되지도 않고, 상황이 반전되지도 않습니다. 그저 깊고 긴 절망의 언어가 이어집니다. “내 목숨은 스올의 문턱에 다다랐습니다. 나는 무덤으로 내려가는 사람과 다름이 없으며, 기력을 다 잃은 사람과 같이 되었습니다.” 이 고백은 신앙적으로 보기 좋게 다듬어진 기도가 아닙니다. 믿음이 좋아서 나오는 말도 아닙니다. 오히려 “이 정도 말 해도 되나?” 싶을 만큼 적나라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이미 죽은 사람, 기억에서 지워진 사람, 하나님의 손에서 끊어진 사람처럼 말합니다. 우리는 보통 이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렇게 기도하면 안 된다고 배워왔습니다. 감사해야 하고, 믿음을 고백해야 하고, 긍정적인 말을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시편을 지워 버리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 안에 그대로 남겨 두셨습니다. 왜일까요. 하나님은 이 기도를 “불신앙”으로 처리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절규를 버릇없는 아이의 투정처럼 듣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파서 울며 “어디 가지 마세요”라고 매달리는 아이의 울음처럼 들으셨습니다.
아이에게는 논리도, 표현력도, 신학도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엄마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도망가지 않고, 숨지 않고, 엄마를 향해 울음을 터뜨린다는 것입니다. 이 기도는 바로 그 지점에 서 있는 것입니다. 상황은 절망적이고, 감정은 바닥을 치지만, 그는 끝까지 하나님께 말합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너무 ‘어른스럽게’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의 바르게, 신앙답게, 정리된 말로만 다가가야 한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어머니처럼, 우리가 무너진 얼굴 그대로 안기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이 시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신앙이 단단할 때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을 때, 두려움밖에 없을 때, 말이 엉켜 버릴 때도 하나님께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고독 속에서도, 설명할 수 없는 불안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만이 아니라 “어머니”처럼 부를 수 있습니다. 안아 달라고, 놓지 말아 달라고, 그냥 함께 있어 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의 결론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상황이 좋아서 감사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 강해서 감사하는 것도 아닙니다. 있는 것이 두려움뿐이어도, 감사로 살 수 있는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우리가 울 수 있는 품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남은 시간은 문제를 다 해결하며 사는 시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계속해서 넘어지고, 무서워하고, 울며 부르짖는 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압니다. 우리에겐 엄마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엄마보다 더 엄마 같은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리고 남은 시간도, 그 품을 믿으며 그저 감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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