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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시편 97편 - 우리 왕, 우리 주님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21.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나니 땅은 즐거워하며 허다한 섬은 기뻐할지어다.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 불이 그의 앞에서 나와 사방의 대적들을 불사르시는도다. 그의 번개가 세계를 비추니 땅이 보고 떨었도다."(시편 97:1~4)

어느 작은 마을에 두 명의 촌장이 있었습니다. 한 촌장은 돈 많은 지주들과 뒷거래를 하며 마을을 다스렸습니다. 세금은 가난한 농부들에게 더 무겁게 매겨졌고, 재판은 힘 있는 자들에게 늘 유리하게 기울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불만을 품었지만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습니다. 권력 앞에 침묵하는 것이 살아남는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촌장은 달랐습니다. 그는 마을의 가장 낮은 곳, 허름한 오두막을 먼저 찾았습니다. 노인이 겨울을 나기에 충분한 땔감이 있는지, 어린아이가 굶지 않는지를 살폈습니다. 그의 다스림 아래서는 부자도 가난한 이도 같은 무게의 정의를 경험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의 이름을 기쁘게 불렀습니다.

시편 97편은 바로 이 두 번째 촌장, 아니 그보다 무한히 더 크고 완전한 통치자에 대한 노래입니다.
"주님이 다스리시니, 땅은 즐거워하여라." 시편 기자는 이 선언으로 시를 엽니다. 이것은 단순한 종교적인 언어가 아닙니다. 이 세계의 주인이 누구인지, 그 통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정면으로 선포하는 목소리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힘의 논리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자본이 많은 곳에 목소리가 크고, 군대가 강한 나라가 협상 테이블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이른바
'강대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이 약소국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식민지배, 경제적 착취, 불평등 조약 등, 힘이 곧 정의가 되어버린 세계의 민낯입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가 노래하는 하나님 나라는 그런 세계가 아닙니다.
"정의와 공평이 그의 왕좌의 기초"라고 시편 기자는 고백합니다. 왕좌의 기초는 다스림의 가장 밑바닥에 정의와 공평이 깔려 있다는 뜻입니다. 기초가 흔들리면 건물 전체가 무너지듯, 정의와 공평이 없는 통치는 그 어떤 화려함으로도 감출 수 없는 균열을 품고 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 때의 일입니다. 월가의 대형 은행들이 무너질 위기에 처하자 정부는 수천억 달러를 쏟아부어 이들을 구제했습니다. 반면 집을 잃고 길거리로 나앉은 수백만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현실뿐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분노한 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기초가 기울어져 있다는 느낌, 자신들은 다른 무게의 정의를 적용받는다는 그 쓴 감각이 그들을 거리로 나오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통치가 우리 마음을 울리는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거기엔 기울어진 저울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나라는 어떤 모습일까? 시편은 아름다운 언어로 그립니다.
"그 앞에 불이 나아가며", "번개가 세상을 비추며", "산들이 밀랍같이 녹는다."

이 강렬한 이미지들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인간의 모든 불의한 구조물들이 버텨낼 수 없음을 말합니다. 권력으로 쌓아 올린 요새도, 돈으로 세운 성벽도, 그 앞에서는 밀랍처럼 녹아내립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파르트헤이트 체제가 무너지던 1994년을 생각해 보십시오. 수십 년간 인종의 이름으로 사람을 차별하고 억압했던 그 거대한 구조가, 결국은 무너졌습니다. 넬슨 만델라가 교도소에서 걸어 나오던 날, 수많은 사람들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석방이 아니었습니다. 정의가 살아있다는, 공평이 마침내 숨을 쉰다는 감격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라면 이렇게 노래했을 것입니다.
"하늘이 그의 의를 선포하였다." 그러면 이 나라의 백성은 누구입니까? 시편은 분명하게 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 악을 미워하는 자들, 마음이 정직한 자들, 주님을 기뻐하는 의인들." 눈에 띄는 것은 이 자격 목록에 '부자', '권력자', '학식 있는 자'가 없다는 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은 지위나 능력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방향의 문제입니다. 무엇을 사랑하고, 무엇을 미워하며, 어디를 향해 서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어느 호스피스 병동의 간호사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죽어가는 환자들 곁에서 매일 밤을 지샜습니다. 화려한 경력도, 높은 연봉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이 닿으면 임종을 앞둔 이들의 얼굴에서 두려움이 걷혔다고 합니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랑이었습니다. 악 앞에서 눈을 감지 않는 용기였고, 정직하게 타인의 고통 곁에 머무는 마음이었습니다. 시편이 말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시편 97편은 선언으로 시작해 약속으로 끝납니다.
"주님은 성도들의 생명을 지키시며, 악인들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 주신다." 그리고 이어지는 마지막 그림이 아름답습니다. "의인에게는 빛이 뿌려지고,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는 즐거움이 뿌려진다."

빛이
'뿌려진다'는 표현이 마음에 깊이 남습니다. 봄날 아침, 들판에 씨앗을 뿌리는 농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아낌없이, 고르게, 넓게 씨를 뿌립니다. 하나님의 빛도 그렇습니다. 조금씩, 아끼며, 자격 있는 자에게만 비추는 빛이 아닙니다. 정직하게 살고자 애쓰는 이들의 삶 위에 아낌없이, 풍성하게 뿌려지는 빛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힘의 논리로 돌아가고, 불의는 버젓이 고개를 듭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그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노래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왕이 누구인지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왕의 왕좌가 정의와 공평 위에 서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왕의 다스림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노래합니다. 우리 왕, 우리 주님, 만세, 만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