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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심지 않은 밭에서 열매를 기다리는 마음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25.

며칠 전, 숲길을 걷다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소리는 유난히도 애절하게 들렸습니다. 마치 누군가 오래 참아 온 서러움을 토해내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소리를 듣는 순간, 마음속에 한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뻐꾸기 한 마리가 나무 위에 앉아 슬피 울고 있었습니다. 그 옆 가지에는 비둘기 한 마리가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왜 그렇게 슬피 우십니까? 혹시 배가 고프신가요?” 비둘기의 물음에 뻐꾸기는 깊은 한숨을 쉬며 대답합니다. “아니요. 내 아이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합니다. 자식들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노년이 이렇게 씁쓸할 줄은…” 그 말 속에는 억울함과 서운함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비둘기의 다음 질문은 이야기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끕니다.
“그런데… 당신이 언제 알을 낳고 품으셨나요? 당신이 둥지에 앉아 알을 품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요.” 잠시 침묵이 흐른 뒤, 뻐꾸기는 부끄러운 얼굴로 고백합니다. “화창한 날씨에 어두운 둥지에 앉아 있는 게 답답했거든요. 그래서 알은 모두 다른 새들의 둥지에 맡겨 두고, 나는 이 산 저 산을 다니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때 비둘기가 조용하지만 단호하게 말합니다. “참 욕심이 많군요. 심은 것도 없이 무엇을 바라십니까.”

이 이야기는 뻐꾸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놀랍게도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도 닮아 있습니다. 부모이면서도 자녀와의 시간에는 늘 인색한 사람이 있습니다.
“먹여주고 입혀줬으면 됐지”라고 말하지만, 정작 자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울고 웃어준 기억은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자녀의 마음이 멀어졌을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 얼마나 희생했는데…” 그러나 그 희생은 관계의 밭에 뿌려진 씨앗이 아니라, 자기 만족의 밭에 뿌려진 씨앗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교회에서도 비슷한 장면을 봅니다. 말씀과 기도에는 시간을 거의 들이지 않으면서, 신앙의 열매는 풍성하길 기대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자신을 내려놓은 적은 없지만, 하나님의 위로와 응답은 당연히 받아야 한다고 여깁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해해 주지 않으면서 이해받길 원하고, 용서하지 않으면서 용서받길 기대합니다. 섬기지 않으면서 존중받고 싶어 합니다. 이 모든 모습은 결국 뻐꾸기의 울음과 닮아 있습니다. 둥지에는 앉지 않았고, 알도 품지 않았지만, 자녀의 사랑은 당연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분명하게 말합니다.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갈 6:7) 이 말씀은 무섭게 들리지만, 사실은 매우 공정하고 자비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속임수 없는 질서 안에서 살게 하십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두게 되고, 인내를 심으면 인내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면 기쁨으로 단을 거두게 됩니다. 그러나 반대로, 편리함을 심고 관계를 거두려 한다면, 자유만을 심고 책임을 거두려 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 아니라 스스로를 속이는 일이 됩니다.

이 글은 우리를 정죄하기 위해 쓰인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금이라도 둥지에 앉으라고, 지금이라도 씨를 뿌리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초대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오늘 심은 씨앗은 당장 열매를 맺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의 때에 반드시 자라납니다. 조용히 기도의 자리에 앉는 시간, 말없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시간, 불편하지만 책임을 감당하는 시간, 그 모든 순간이 바로 미래를 위한 씨앗입니다.

뻐꾸기의 울음이 슬픈 이유는 노년이어서가 아니라,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심고 있습니까? 그리고 우리는 어떤 열매를 기대하고 있습니까? 이 질문 앞에서 정직해질 때, 하나님은 다시 심을 수 있는 은혜의 계절을 우리에게 허락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