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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으로 사는 삶

믿음 - 믿음의 능력은 어디에서 오는가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1. 8.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누가복음 17:10)

우리는 교회에서 참 많이도
“믿음을 가지라”는 말을 듣습니다. 뜨거운 믿음, 흔들리지 않는 믿음, 부지런한 믿음, 마치 믿음이 근육처럼 훈련하면 커지고, 관리하지 않으면 약해지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믿음을 키우기 위해 애를 씁니다. 기도원을 찾아가고, 부흥회에 참석하고, 교회 일에 더 열심을 냅니다. ‘이 정도면 하나님도 내 믿음을 보시겠지’라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 잡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출발점에는 한 가지 공통된 오해가 있습니다. 믿음의 주체가 ‘나’라는 생각입니다.

믿음은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을 내 노력의 결과로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이런 계산이 따라옵니다.
“나는 이렇게 기도했으니, 나는 이렇게 헌신했으니, 이제 하나님도 응답하셔야 하지 않을까?” 이 순간, 믿음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라 거래의 수단이 됩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아니라 심사위원이 되고, 신앙은 관계가 아니라 성과 평가가 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음을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위로부터 주어진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완전한 믿음을 주시고
“이제 네가 완성해 보라”고 맡기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신 믿음은 처음부터 구원에 충분한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붙들고, 이끌고, 다스립니다. 우리가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이 말은 겸손해 보이지만, 사실은 인간의 한계를 드러내는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그 앞에 예수님의 말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형제가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죄를 짓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제자들은 즉시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믿음을 더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은 뜻밖의 대답을 하십니다.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말씀은 제자들을 격려하기 위한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너희에게는 그 겨자씨만한 믿음조차 없다”는 선언입니다.

예수님은 산과 뽕나무의 비유를 드십니다.
“산더러 바다에 던지우라 하라”,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우라 하라”. 우리는 이 말씀을 들으면 ‘대단한 믿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지도 못합니다. 왜일까요? 이미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 될 걸 알기 때문입니다. 상식과 경험과 계산이 우리 마음을 꽉 붙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들려야 합니다. “너희는 의심 없는 믿음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즉, 믿음 있는 인간은 없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흔히 믿음의 능력을 이렇게 생각합니다. 병이 낫는 것, 문제가 해결되는 것, 기도가 응답되는 것, 그래서 그런 간증을 들으면 마음이 흔들립니다.
‘나는 왜 저런 능력이 없을까?’ ‘내 믿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병이 나았다고 사람이 변합니까?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인간의 본성이 달라집니까? 오히려 다시 문제 앞에서 불안해하고, 다시 응답을 요구하고, 다시 하나님을 계산하지 않습니까?

진짜 믿음의 능력은 자기만 바라보던 사람이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면, 회사에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본능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은 이것입니다.
“왜 나한테만 이런 일이 생기지?”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그런데 어느 순간, 이 질문이 바뀝니다. “주님, 이 자리에서도 주님의 뜻이 있음을 믿습니다.” 상황은 바뀌지 않았는데, 사람이 바뀝니다. 이것이 믿음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이 고백은 자기를 깎아내리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자유로운 고백입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내 행위로 인정받으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 수고로 보상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순종할 뿐입니다. 그 순종조차도 주인이 주신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성도는 사랑하면서도
‘내가 사랑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섬기면서도 ‘내가 헌신했다’고 계산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인이 하셨습니다.” “믿음의 능력이 이렇게 하게 했습니다.”

산이 옮겨지는 기적보다, 병이 낫는 기적보다, 더 크고 놀라운 기적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던 인간이 하나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 기적에 붙들린 사람은 종으로 사는 것이 억울하지 않습니다. 순종이 무겁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쁨이 됩니다. 이 믿음의 능력에 사로잡혀 세상의 작은 기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종으로 살아가는 기쁨을 끝까지 누리는 참된 성도로 서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