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에 앉아 있던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아 있던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마태복음 4:16)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조금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하루를 아침으로 시작해 저녁으로 끝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정반대로 말합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하나님의 하루는 어둠에서 시작하여 빛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이 패턴은 여섯 날 동안 반복됩니다. 저녁, 그리고 아침, 어둠, 그리고 빛, 이 반복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역사입니다.
인간의 역사, 개인의 인생, 한 해의 시간 역시 늘 이 구조 안에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저녁에서 시작해 아침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 반복의 끝에 일곱째 날, 다시 어둠이 없는 하나님의 안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늘 아침부터 시작하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환하고, 분명하고, 자신 있는 출발, 그러나 하나님은 늘 어둠에서 시작하십니다.
에덴동산에서 인간은 한 가지 유혹에 무너졌습니다. “네가 이것을 먹는 날에는 하나님과 같이 될 것이다.” 선악과를 먹는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열매를 먹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판단하겠다”, “내가 기준이 되겠다”, “내가 주체가 되어 선과 악을 결정하겠다”는 선언이었습니다.
행위주의는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이 정도면 괜찮지 않나?” “이만큼 했으면 하나님도 만족하시겠지.” “이제는 내가 좀 해낼 수 있어.” 이 사고는 지금도 반복됩니다. 새해가 되면 우리는 결심합니다. 더 열심히 살겠다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겠다고, 이번에는 반드시 해내겠다고 다짐합니다.
어느 직장인의 이야기 입니다. 그는 매년 새해만 되면 다이어리 첫 장에 이렇게 썼습니다. “이번 해는 내가 나를 증명하는 해다.” 처음 몇 주는 열심이었습니다. 새벽 운동, 독서 계획, 목표 관리,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는 지쳐갔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밤, 밤하늘의 별을 보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이렇게 열심히 해도 공허하지?” 그의 문제는 게으름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문제는 빛을 스스로 만들어 내려 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빛은 언제나 외부로부터 주어집니다. “빛이 있으라”는 명령은 인간에게 맡겨진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비추셔야만 빛이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말합니다. “그 성에는 해나 달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하늘나라는 자체 발전소가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자기 의, 자기 열심, 자기 기준이 필요 없는 나라입니다. 예수가 직접 비추시기 때문입니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다는 것은 “조금 더 착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금 더 성실해진다”는 말도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주체가 되는 자리에서 내려오는 것입니다.
야곱은 평생을 자기 힘으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속이고, 계산하고, 빼앗고, 도망치며 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마저 이용하려 했습니다. “내가 이만큼 씨름했으니 복을 받아야지.” 얍복강 밤은 야곱의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그 밤에, 그는 하나님과 씨름했습니다. 끝까지 버텼습니다. 그리고 이겼다고 생각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환도뼈를 치셨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해가 돋았고, 그는 절었더라.” 새벽은 밝아왔지만, 그는 더 이상 예전처럼 걸을 수 없었습니다. 이 장면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하나님을 만났고, 복을 받았고, 새 이름 ‘이스라엘’을 얻었지만 그의 삶에는 영원히 남을 절뚝거림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은혜였습니다. 그 절음은 야곱에게 “다시는 네 힘을 의지하지 말라”는 십자가의 흔적이었습니다.
베드로의 새벽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드로는 자신감의 화신이었습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그는 세 번 부인했습니다. 닭이 울고, 새벽이 왔습니다. 그는 울었습니다. 그 수치의 기억은 평생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 새벽 이후, 베드로는 더 이상 자기 확신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성령을 의지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넘어진 자만이 아는 새벽이 있었던 것입니다.
어둠에서 스스로 나올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어둠 속에 그대로 두신 채 빛을 비추십니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간 것도 자기 지식이나 신비한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인도한 것은 하늘의 별이었습니다. 빛은 언제나 우리 바깥에서 오는 것입니다.
새해의 계획을 조심스럽게 세우십시오. 새해 목표를 세우지 말라는 말이 아닙니다. 꿈을 꾸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이 꿈을 꾸십시오. 더 크게 계획하십시오. 그러나 다만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꿈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 그 계획이 허무해질 수 있다는 것, 왜냐하면 그것이 야곱의 환도뼈를 치시는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아무 목표도 없는 삶은 의가 아닙니다.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그러나 목표를 세우고도 그 목표가 나를 살리지 못함을 깨닫는 것, 그것이 은혜입니다.
올 한 해, 당신의 걸음이 조금 절뚝거릴지도 모릅니다. 자존심이 상하고, 들키고,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그것은 아직 밤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새벽은 옵니다. 내 무력이 분명해지는 그 순간이 바로 새벽입니다. 주님을 의지할 이유가 분명해지는 그때가 빛이 비추는 시간입니다. 비록 어둠으로 시작했을지라도, 올 한 해 내내 복음 안에서 새벽이 밝아오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로마서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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