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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심판 속에 꽃피는 구원 - 생명의 씨를 위한 고통의 여정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24.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창세기 3:16)

구속의 강물은 파탄과 절망의 현장 속에서도 흐릅니다. 창세기 3장의 이야기는 타락의 현장입니다. 인간의 불순종, 죄의 결과, 하나님의 심판이 드러나는 장면이지만, 창세기 3장에는 놀랍게도 회복의 메시지와 구속사의 씨앗이 심겨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에덴에서 내어 쫓으시지만, 그 내쫓음은 파괴가 아닌 보호였습니다. 죄 가운데 영원히 머물지 않게 하시려는 자비였고,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회복의 길을 예비하신 은혜였습니다.

여자의 저주 속에 복음의 그림자가 담겨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임신과 해산의 고통을 더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창 3:16). 이는 단순한 형벌이 아니라, 생명의 탄생을 위한 필연적인 고통이었고, 더 깊이 들어가면 복음적 상징입니다. 성도는 ‘
여자’입니다. 생명의 씨,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성도 안에 뿌려질 때, 그 씨가 자라고 열매 맺도록 하기 위해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이 태어나야 합니다. 그 과정은 ‘해산의 고통’입니다. 옛 사람의 자아가 허물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고통, 그것이 성도의 성화의 길입니다.

생명을 잉태한 자의 삶은 정절과 순종입니다. 여자가 남자의 씨를 받을 때, 여자는 자신이 아니라 아이 중심으로 모든 생체 리듬이 바뀝니다. 입맛도 바뀌고, 행동도 달라지며, 생각도 변합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잉태한 자들로서 그 생명이 우리 안에서 자라도록 모든 삶의 방향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신앙생활이며,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는 고백입니다.

이제 성도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원하게 되고, 그분이 싫어하시는 것을 싫어하게 되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 삶은 전혀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관을 요구하며, 이전 삶과는 충돌을 일으킵니다. 고통스러운 이유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명을 낳는 고통이며, 구원을 위한 고통입니다.

하나님은 구속사 속에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심으로써, 하나님과 성도의 관계를 묘사하십니다. 하나님은 남편, 성도는 신부입니다. 이 관계는 성도의 절대 의존성과 순종을 상징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생명의 씨를 받은 성도는 다시 세상 속에서 아들로 살아가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생명을 전하는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신부이면서 동시에 아들입니다. 교회는 여성명사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는 이유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신 것은 분명한 심판이지만, 그 안에는 더 큰 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죄를 지은 상태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영원히 살게 될 것을 막으시기 위한 조치였습니다. 회복의 기회를 주시기 위한 보호였습니다. 그 길 끝에 예수 그리스도, 생명나무의 실체가 서 계십니다.

예수님은 다시 오실 남편입니다. 우리는 그분을 기다리는 열 처녀입니다. 그러나 다가올 신랑을 믿음으로 준비한 슬기로운 다섯 처녀만이 혼인 잔치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 믿음조차 남편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은 매 순간 남편을 기다리는 신부로서 정절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15절은
"여자가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을 지니고 정숙하게 살면 아이를 낳는 일로 구원을 얻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는 문자적 의미를 넘어선 구속사적 선언입니다. 성도는 해산의 고통, 즉 자기 부정과 자아의 죽음을 통해 예수의 생명이 자라나고, 결국에는 온전히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는 자로 서게 됩니다. 이것이 진정한 구원이며, 영화입니다.

심판은 끝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속에는 언제나 구원이 숨겨져 있습니다. 창세기 3장은 인류의 시작을 알리는 심판장이 아니라, 구속사의 서막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쫓겨남은 구원의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 해산의 고통, 옛 사람의 죽음은 저주가 아니라 생명의 열매를 위한 필연적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여전히 하나님의 생명을 받아 살아야 하는 신부이며, 동시에 그 생명을 전하는 아들들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십시오. 정절을 지키십시오. 그리고 해산의 고통을 기쁨으로 감당하십시오. 그 끝에는 참된 생명, 참된 기쁨, 참된 영광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고전 16:13) “나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갈 2:20)  

“슬기로운 신부로, 하나님의 영광을 기다리는 삶을 사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