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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

썬다 싱의 생애 - 십자가를 입고 히말라야를 걷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24.

썬다 싱은 어떤 분인가? 썬다 싱(1889–1929? 추정)은 인도 출신의 기독교 성자이자 복음 전도자, 그리고 ‘그리스도를 따른 사두’로 불린 인물입니다. 그는 서구 선교사가 아니라, 인도의 영성과 삶의 방식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한 독특한 신앙인이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평안을 찾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 평안을 상처를 피하는 길에서 찾고, 썬다 싱은 그 평안을 상처를 껴안는 길에서 찾았습니다. 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묻게 됩니다. “
나는 무엇을 붙들고 살고 있는가?” 그리고 더 깊이 묻게 됩니다. “나는 과연 십자가를 알고 있는가?

썬다 싱은 인도의 북부 펀잡 지방, 부유한 시크교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삶의 첫 번째 신학교는 교회도, 경전 학교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품이었습니다. 경건하고 고상하며 사랑이 깊었던 그의 어머니는 삶 전체로 신앙을 가르친 사람이었습니다. 말보다 침묵으로, 교리보다 태도로, 신을 논하기보다 신 앞에 사는 법을 보여주었습니다.

훗날 썬다 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
나를 예수께로 이끄신 분은 예수님이시고, 나를 사두로 만드신 분은 어머니이십니다.” 믿음은 정보가 아니라 전염입니다. 어머니의 영성은 말없이 그에게 스며들었고, 그의 영혼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보이지 않는 세계를 향해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네 살 되던 해, 그의 인생에 설명할 수 없는 밤이 찾아왔습니다. 사랑하던 어머니와 형이 잇달아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이 상실은 단순한 슬픔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세계 전체가 무너지는 사건이었습니다. 기도하던 신은 침묵했고, 붙들던 믿음은 손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는 미친 듯이 신을 찾았습니다. 힌두교, 요가, 명상, 철학… 그러나 아무것도 그의 마음에 안식을 주지 못했습니다. 사람이 가장 위험해지는 순간은 신을 부정할 때가 아니라 신이 필요한데 신을 만나지 못할 때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기독교 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강요된 종교는 그의 마음을 더 닫아버렸습니다. 예수의 이름은 위로가 아니라 모욕처럼 들렸고, 성경은 생명이 아니라 공격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성경을 찢어 불태웠습니다. 전도자에게 돌을 던졌고, 예수의 이름을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어떤 반항으로도 꺼지지 않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한가?” “왜 아무도 나를 쉬게 하지 못하는가?” 그는 자신도 모르게 찢었던 성경에서 한 구절을 다시 보게 됩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리고 또 하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그는 감동했습니다. 그러나 믿지는 않았습니다. 진리는 감동으로 끝날 수 없습니다. 진리는 목숨을 요구합니다.

결국 그는 자살을 결심합니다. “
이 땅에서 평안을 얻지 못한다면 죽어서라도 찾겠다.” 그는 하나님께 마지막 조건을 내겁니다. “당신이 계시다면 나타나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죽겠습니다.” 1904년 12월 18일 새벽, 죽음을 향해 열린 그 방에 빛이 임했습니다. 그 빛 가운데, 그가 그토록 미워했던 예수 그리스도가 서 계셨습니다. “나는 너와 온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서 내 생명을 버렸다.” 이때 썬다 싱은 처음으로 자신이 찾던 평안은 진리를 소유함이 아니라 진리께 붙들림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회심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습니다. 그의 믿음은 즉시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가족의 배척, 폭력, 조롱, 마침내 독약이 든 밥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
주님께서 나를 헛되이 살게 하려고 이 생명을 주시지는 않으셨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사두의 옷을 입었습니다. 집도, 돈도, 미래의 안정도 없이 오직 성경 한 권과 예수 한 분만 가지고 길을 나섰습니다.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 인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은 인도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십자가는 피하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입니다. 히말라야, 티베트, 네팔… 그의 전도 여정은 언제나 죽음과 맞닿아 있었습니다. 우물에 던져지고, 거머리 형벌을 받고, 눈보라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에 서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는 고백합니다. “
예수님의 평화는 지옥 같은 우물을 천국의 문으로 바꾸신다.” 썬다 싱에게 신앙은 안전한 피난처가 아니었습니다. 신앙은 십자가를 지고 주님 뒤를 따라가는 길이었습니다.

눈보라 속에서 자기만 살겠다고 먼저 간 동행자는 얼어 죽고, 타인을 업고 간 썬다 싱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때 그에게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복음은 이론이 아니라 삶에서 증명되는 진리입니다.

썬다 싱의 삶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고 있는가, 아니면 이용하고 있는가, 우리는 십자가를 존경하는가, 아니면 피하고 있는가, 우리는 평안을 환경에서 찾는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가, 그는 말없이 대답합니다. “
그리스도는
편안함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

썬다 싱은 위대한 영웅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끝까지 예수를 붙든 한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질문이 주어집니다. “
너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리고 “그렇다면 너는 어떻게 살 것인가?” 히말라야를 걷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를 것인지는 지금도 선택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