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누가복음 12:2)
사람은 종종 죄를 은밀히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둠 속에서 행한 일은 어둠에 묻히고, 아무도 보지 않았다면 문제되지 않는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과 영적 증언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죄는 결코 영원히 숨겨지지 않습니다. 시간이 문제일 뿐, 반드시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드러남 자체가 이미 심판의 시작입니다. 썬다 싱이 본 영적 세계의 장면들은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지금 회개할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을 붙들라는 사랑의 경고입니다.
한 선한 사람이 밤길을 가다 도적질 현장을 목격합니다. 그는 침묵하지 않고 도적을 말립니다. 그러나 도적은 오히려 선한 사람을 위협하고, 결국 둘은 함께 체포됩니다. 겉보기에는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감옥 안에서 도적은 조롱합니다. “네 종교가 너를 구해 주는지 보자.” 그러나 숨어서 지켜보던 자들이 진실을 듣게 되고, 결국 선한 사람은 풀려나고 도적은 형벌을 받습니다.
이 장면은 중요한 진리를 말합니다. 선과 악은 잠시 같은 자리에 묶일 수 있으나, 결코 같은 결말에 이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아도 결코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눅 12:2)
혼자라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집 안에서 아무도 모르게 깊은 죄를 범합니다. 그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는 전혀 다릅니다. 그 방 안에는 천사와 성도, 그리고 그를 돕기 위해 온 영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의 죄를 보며 슬퍼하고, 장차 심판의 날에 그 죄를 증언해야 할 처지가 되었음을 안타까워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통찰이 있습니다. 우리를 지켜보는 눈은 감시의 눈이 아니라, 도우려는 눈입니다. 그러나 회개하지 않는 죄는, 결국 그 도움의 손길마저 증인의 자리로 밀어냅니다.
한 영혼이 영의 세계에서 미친 사람처럼 방황합니다. 그는 생전에 수없이 회개할 기회를 가졌지만, 괴로울 때마다 술로 양심의 소리를 덮었습니다. 결국 그는 모든 것을 잃고 스스로 생을 끊었습니다. 영계에서는 더 이상 죄를 잊을 술도, 양심을 마비시킬 도피처도 없습니다. 죄의 기억은 날마다 새롭고, 마음은 이미 굳어 회개조차 어렵습니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으로 양심의 소리를 덮고 있는가?”
악인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이유는 쫓겨난 것이 아니라 도망친 것입니다. 한 악인이 하나님의 허락으로 천국 문 앞까지 인도됩니다. 아무도 그를 막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빛 앞에 서자 그는 견딜 수 없는 불안을 느낍니다. 그 빛이 그의 죄된 삶을 모두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는 스스로 도망쳐 어둠으로 떨어집니다.
여기서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놀랍습니다. “아무도 이 사람을 막지 않았다. 이 거룩한 곳에서 도망하게 만든 것은 그의 불결한 생애이다.” 지옥은 억지로 끌려가는 곳이 아니라, 빛을 견디지 못한 영혼이 스스로 선택한 어둠인 것입니다.
설교자를 죽인 살인자가 죽어 영의 세계에 들어오자, 그의 영혼은 이미 어둠의 자식임이 분명합니다. 악령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붙잡아 갑니다. 천사의 말은 섬뜩합니다. “여기서는 따로 형벌을 선고할 필요가 없다. 그 사람의 삶이 이미 그의 죄를 증명한다.” 심판은 사후에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죄 가운데 살 때 이미 시작되는 것입니다.
거짓이 습관이 되어 제2의 본성이 된 사람은 영의 세계에서도 거짓을 시도합니다. 그러나 말하기도 전에 그의 생각이 모두 드러납니다. 그곳에서는 위선이 불가능합니다. 거짓말은 결국 남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는 행위입니다. 그 결과, 진리를 인식할 능력 자체가 죽어 버립니다.
간음자의 영혼은 끝없는 갈증과 불타는 욕망 속에서 괴로워합니다. 세상에서 누리던 감각적 쾌락은 사라졌으나, 왜곡된 욕망만 남아 그를 찢어 놓습니다. 결혼은 쾌락을 위한 제도가 아니라 서로 돕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연합입니다. 그 목적에서 벗어날 때, 죄는 반드시 영혼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도적은 영의 세계에서도 훔치려 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의 죄를 고발합니다. 그는 영적 분별력 자체를 상실했습니다. 결국 그는 세상에서 이미 죽여 버린 양심 때문에 어둠 속에 가두어집니다. 천사는 말합니다. “이 사람의 양심은 이미 세상에서 죽었다.”
이 모든 이야기가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입니다. 심판은 하나님이 임의로 내리시는 형벌이 아니라, 삶이 스스로 맺는 열매입니다. 빛을 사랑한 자는 어디서든 천국을 살고, 죄를 사랑한 자는 어디서든 지옥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 은혜의 때입니다.
아직 육체를 입고 있을 때, 아직 회개할 수 있을 때, 그리스도의 피로 씻김 받을 수 있을 때 돌아와야 합니다. “사람이 만일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이 말씀은 위협이 아니라 초대입니다. 지금 돌이키십시오. 빛으로 나오십시오.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히브리서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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