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태복음 25:34)
많은 사람들에게 천국은 죽은 뒤에나 막연히 들어가게 되는 먼 세계처럼 여겨집니다. 그러나 성경과 신앙의 증언은 분명히 말합니다. 천국, 곧 하나님 나라는 참 성도가 이 땅을 사는 순간부터 이미 시작됩니다. 의인의 삶은 죽음 이후에 갑자기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형성된 믿음의 방향과 성품이 영원 속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참된 성도의 마음에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기쁨이 깃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박해와 곤란,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도 그는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모든 평화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죽음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죽음은 단절이 아니라 귀향이며, 육체를 벗는 날은 소멸의 날이 아니라 영계로의 탄생일입니다.
한 의인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는 이를 생생히 보여줍니다. 30년 동안 전심으로 주를 섬긴 한 참 성도가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 주님은 그의 영안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는 아직 육체를 떠나기 전에 하늘이 열리고, 천사와 성도의 무리가 그를 맞이하러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주께서 손을 내밀어 자신을 맞이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광경이 얼마나 실제적이었던지, 그는 곁에 있던 사람들이 놀랄 만큼 소리를 내어 외쳤습니다. “오! 나의 행복된 날이여! 나는 오랫동안 주를 보고자 원했고, 주 계신 곳에 가기를 기다려 왔다. 친구여, 나를 위하여 슬퍼하지 말고 기뻐하라. 나는 참 내 본향으로 떠난다.” 주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는 그를 보고 “아마 미친 것 같다”고 속삭였지만, 그는 확신에 차 있었습니다. 영적 실재를 보지 못하는 눈과, 그것을 분명히 보는 눈 사이의 간극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맡기나이다.” 그리고 평안히 잠들었습니다. 육체를 떠난 영혼, 그리고 주님의 위로 영혼이 육체를 떠나자마자 천사들이 그를 맞이하였습니다. 그는 잠시 멈추어 달라 요청하고, 자신이 떠나온 육체와 슬퍼하는 가족들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는 영혼이 육체를 떠난 뒤에도 자기 몸과 사랑하는 이들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만일 그들이 내가 살아 있음을 볼 수만 있다면,
나를 위하여 이렇게 울지 않을 텐데…”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위로하려 했으나, 그의 손은 공기처럼 그들을 통과할 뿐이었습니다. 영적 실재는 육적 감각으로 인식되지 않습니다. 이때 천사가 말합니다. “오라. 우리는 그대를 영원의 가정으로 인도하겠다. 이 이별은 잠시뿐이다. 주께서 친히 저들을 위로하실 것이다.”
이 말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큰 위로입니다. 성도의 이별은 영원한 단절이 아니라 잠시의 분리일 뿐입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늘로 인도받는 길에서 그는 이미 먼저 간 친구들과 성도들의 환영을 받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늘문 앞에서 그는 그리스도 자신을 만납니다. 그는 즉시 엎드려 경배했지만, 주님은 그를 일으켜 안으시며 말씀하십니다. “잘하였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의 기쁨에 참예하라.”
이 말씀은 단순한 환영 인사가 아닙니다. 이것은 이 땅의 신실한 삶에 대한 하늘의 최종 평가입니다. 눈물 흘리는 그를 주님은 친히 닦아 주시고, 천사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이 사람을 위하여 태초부터 예비한 가장 영광스런 주택으로 인도하라.” 여기서 우리는 분명히 봅니다. 천국은 즉흥적으로 주어지는 공간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준비된 나라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예화를 보면, 평생 스스로를 박학하고 경건하다고 여겼던 한 교직자는 죽은 후, 즉시 가장 높은 하늘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는 중간 상태에서 교육을 받게 됩니다. 그는 불평합니다. “나는 일생 동안 천국 가는 도리를 가르쳤다. 무엇을 더 배워야 한단 말인가?” 이에 천사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그대의 문제는 무지가 아니라 교만이다. ‘나는 다 안다’는 생각이 그대를 주께로 더 가까이 가지 못하게 한다.”
반면, 이름 없이 살아온 한 노동자는 더 높은 곳으로 인도됩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겸손과 기도, 정직한 삶으로 이미 하늘에 합당한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분명해지는 것은 하늘의 기준은 직분도, 명성도, 지식도 아닙니다. 하늘의 기준은 ‘영적 가치’와 ‘겸손한 사랑’입니다.
천국에서는 위선이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로부터 흘러나오는 빛이 모든 것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의인의 영혼은 그가 이 땅에서 형성한 성품과 사랑의 정도만큼 빛납니다. 질투는 없고, 비교는 사라지며, 서로를 높이는 기쁨만이 존재합니다. 모든 것은 공동의 기쁨을 위해 준비되어 있고, 누구도 움켜쥐지 않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안에서 만물을 비추시며, 그 빛은 우주의 끝까지 흐릅니다. 그곳에서 성도의 모든 소원은 자기중심적 욕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성취됩니다. 그래서 기쁨은 끝이 없고, 진보는 멈추지 않습니다.
나는 지금,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를 살고 있습니까? 천국은 죽어서 가는 장소이기 전에, 지금 어떤 마음으로, 어떤 방향으로 살고 있는가의 결과입니다. 겸손과 사랑, 신뢰와 순종으로 오늘을 사는 자에게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문이며, 끝이 아니라 완성입니다. 의인의 도달점은 분명합니다. 영원한 기쁨, 영원한 평화, 그리고 영원한 하나님과의 교제, 오늘을 그렇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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