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마태복음 20:26)
사람은 눈에 보이는 세계만을 실제라고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경과 성도들의 깊은 영적 증언은 우리에게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보이지 않는 세계는 쉼 없이 우리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라고 묻습니다. 그러나 침묵처럼 보이는 그 시간 속에서도 하나님은 결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계시지 않습니다. 이미 이 땅에서 생을 마친 성도들, 그리고 하나님의 사명을 맡은 천사들은 우리 삶 가까이에서 조용히 봉사합니다.
그들의 도움은 거의 언제나 드러나지 않는 방식입니다. 번뜩이는 환상이나 두려운 체험이 아니라, 문득 마음에 떠오르는 선한 생각, 죄에서 물러서게 하는 작은 양심의 울림, 절망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게 하는 설명할 수 없는 평안으로 다가옵니다.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은 가장 큰 은혜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변화할 수 없지만, 성령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안에서 이루십니다. 그래서 참된 영적 성장은 결코 인간의 결심이나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자신을 맡기는 데서 시작됩니다.
누가 가장 큰 사람인가 세상은 묻습니다. “누가 더 많이 아는가?”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는가?” 그러나 주님은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지십니다. “누가 더 섬기는가?”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될지니라.”(마 20:26) 사람의 위대함은 소유나 성취가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을 살리는 통로가 되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이 다른 사람에게 쉼이 되고, 길이 되고, 소망이 된다면, 그 생애는 이미 하늘의 기준에서 위대한 것입니다.
썬다 씽의 묵시에서 말하듯, 하늘의 삶은 사랑으로 서로 봉사하는 기쁨의 삶입니다. 거기에는 경쟁도, 비교도 없습니다. 오직 사랑으로 자신을 내어주는 삶이 영원의 기쁨으로 이어질 뿐입니다.
사람은 종종 자신의 신앙과 생각이 옳다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열심과 진리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사람은, 자신의 견해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교정받을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이 교정은 억지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인간의 자유의지를 짓밟지 않으십니다. 이 땅에서도, 영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기를 거절하는 완고한 마음은 어디서든 닫혀 있습니다. 그러나 겸손히 배우기를 기뻐하는 영혼은, 이 땅에서든 저 세상에서든 빛 가운데로 인도받습니다. 성령의 가르침, 성도들과의 교제,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는 서로 어우러져 우리의 왜곡된 신앙을 조금씩 바로잡아 갑니다.
썬다 씽은 우상숭배자가 죽어 영의 세계에 들어오는 장면을 봅니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신이 섬기던 신을 찾지만, 성도들은 단호히 말합니다. “참 신은 오직 한 분이시며, 그분의 나타나심은 그리스도뿐이다.”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의 반응입니다. 그는 변명하지 않습니다. 부인하지 않습니다. 정직하게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진리를 찾습니다.
그 결과,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나타나십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빛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영광은 너무 커서, 천사조차 얼굴을 가릴 정도이기 때문입니다(사 6:2).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진리를 배웁니다.
주님은 각 사람의 영적 상태에 맞게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어렴풋한 빛일지라도, 그 빛을 통해 주님을 본 영혼은 말할 수 없는 기쁨과 평안으로 충만해집니다. 그 빛은 생명을 주는 빛입니다. 그 사랑은 모든 잘못을 씻는 사랑입니다. 그 앞에서 영혼은 겸손히 무릎 꿇고 찬송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예화는 우리를 깊이 돌아보게 합니다. 한 사람은 평생 생계에만 매달려 하나님을 생각할 겨를이 없었던 노동자였습니다. 다른 한 사람은 모든 것을 의심하며 선한 것조차 믿지 않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영의 세계에서 어둡고 낮은 곳에 머뭅니다. 고통 가운데서 도움을 구하지만, 그들의 마음은 여전히 닫혀 있습니다. 죄로 왜곡된 성질은 선을 선으로 보지 못하게 만듭니다.
악에 물든 마음은 나쁜 소식은 쉽게 믿고, 좋은 소식은 의심합니다. 선한 마음은 그 반대입니다. 이 차이는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성질의 문제, 곧 마음의 방향성의 문제인 것입니다. 결국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거부한 삶은, 저 세상에서도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반대로 이 땅에서 주의 뜻에 순종한 삶은, 영의 세계에서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나라를 고향처럼 느끼게 됩니다.
이 글이 우리에게 묻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나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도움을 신뢰하며 살고 있는가? 나는 섬김으로 위대해지는 길을 선택하고 있는가? 나는 교정받기를 기뻐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그리스도의 빛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마음을 낮추고 있는가?' 영의 세계는 갑작스러운 장소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는지의 연장선입니다.
오늘의 삶이 곧 내일의 영원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다시 겸손히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보이지 않는 도움을 믿게 하시고, 사랑으로 섬기며, 배우기를 기뻐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보내심이 아니냐”(히브리서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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