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시편 27:4)
네 살배기 아이가 공원 벤치에 앉아 해바라기를 가만히 바라보며 말했습니다.“엄마, 저 꽃 웃고 있어요.” 엄마는 놀란 눈으로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응, 웃고 있네. 너도 웃고 있구나.” 아이의 시선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봅니다. 순결한 눈은 세상의 고운 빛깔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그로 인해 스스로도 환하게 웃을 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하루의 시작을 맞고, 눈으로 세상의 소식을 들여오고, 눈으로 누군가를 바라보며 사랑을 전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눈이 점점 더 어두워지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미디어는 자극적인 뉴스와 추악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고, 스마트폰 속의 이미지들은 비교와 탐욕을 자극합니다. 그 결과, 많은 이들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잊고 삽니다. 그리고 결국, 행복도 잃게 됩니다.
“몸이 천 냥이면 눈은 구백 냥”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이는 눈이 단순히 육체의 기관이 아닌, 인생의 방향을 결정짓는 ‘창’이라는 뜻입니다. 눈이 바라보는 것이 결국 마음을 결정짓고, 마음이 인생을 만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한 수도자가 광야에서 수십 년을 기도하며 살았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왜 세상을 떠나 여기에서 사십니까?” 그는 대답했습니다. “내 눈이 매일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불만과 욕심이 커지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면 내 안에 평화가 흐릅니다.”
이 고백은,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느냐가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는 진리를 보여줍니다. 우리의 눈이 자주 어두운 것을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누군가의 실수, 자신의 부족함, 타인의 성공과 나의 실패… 그러한 시선은 결국 마음을 병들게 하고, 우리의 영혼을 메마르게 만듭니다.
그러나 반대로, 눈이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사람의 선함을 바라보고, 작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다면 그 인생은 언제나 밝고 감사로 가득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보이는 것을 따라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은 단지 예술관이나 자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침 햇살이 주는 따뜻함, 웃으며 인사하는 이웃, 조용히 밥을 짓는 어머니의 뒷모습, 한 아이의 재잘거림… 이 모두는 아름다움입니다. 하지만 이 아름다움을 보는 눈은 ‘선택’에서 비롯됩니다.
세상에는 늘 두 가지 장면이 공존합니다. 가시덤불도 있고, 그 사이 피어난 들꽃도 있습니다. 불평할 이유도 있지만, 감사할 이유도 늘 존재합니다. 분노의 뉴스가 넘치지만, 사랑의 손길도 여전히 세상에 가득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아름다운 것을 보려고 애쓴 사람’입니다. 슬픈 일이 있었지만, 아름다움을 더 바라본 사람이 결국 ‘행복한 인생’을 살아갑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이든지 참되며, 무엇이든지 경건하며, 무엇이든지 옳으며, 무엇이든지 정결하며, 무엇이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이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립보서 4:8)
이 말씀은 단순한 긍정의 권면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늘 ‘무엇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느냐’가 삶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근본적 진리입니다. 눈이 어두운 것을 보면 마음도 어두워지고, 마음이 어두워지면 영혼은 점점 하나님의 빛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6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네 온 몸이 밝을 것이요.”(마태복음 6:22) 눈이 성하면, 다시 말해 우리가 맑고 선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 인생 전체가 밝고 맑아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당신은 오늘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세상의 험한 현실 속에서도 여전히 살아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있습니까?타인의 약점보다 그 속의 가능성과 따뜻함을 보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 아름다운 것을 보기로 선택하십시오. 맑은 시선을 갖고, 감사의 눈으로 주변을 바라보십시오. 그것이 곧,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의 통로’입니다.
'신앙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난에 굴복하지 않기 - 시련은 축복의 전주곡이다 (0) | 2025.07.25 |
---|---|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 가장 낮은 곳에서 받쳐 주시는 하나님의 손 (0) | 2025.07.23 |
잃어버린 주님 - 어디서 놓쳤는가 (1) | 2025.07.22 |
그럴 수도 있잖아요 - 이해하는 마음 (0) | 2025.07.22 |
너희 천부께서 - 하늘의 아버지를 부를 수 있는 자의 특권 (1) | 2025.07.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