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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 말씀 묵상

에베소서 - 하나님이 주신 가장 큰 이름(양자 삼으심)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2. 11.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에베소서 1:3~6)

본문의 말씀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응축해 보여줍니다. 그 말씀의 중심에는 바로 “
양자 삼으심”, 즉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이 진리를 이해하는 순간, 우리는 “구원”이라는 단어를 전혀 다른 눈으로 보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 아니 이 세상 자체가 존재하기도 전부터 하나님의 마음 안에 이미 우리의 이름이 있었다고 말합니다.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엡 1:4) 이 말은 단순히 “하나님이 미리 아셨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도를 가지셨고, 계획을 가지셨고, 그 계획을 반드시 이루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가 전한 하나님의 선언은 이 사실을 더 분명히 보여줍니다.
“내가 뜻한 것은 반드시 이루고, 계획한 것은 반드시 성취하겠다.”(사 46:10~11) 우리는 늘 내 인생이 내 선택과 내 행동에 의해 흘러간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의 선택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훨씬 더 큰 시야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우리 삶의 깊은 아래에는 하나님이 이미 깔아 놓으신 구원의 경륜이 흐르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기 이전에, 내가 회개하기 이전에,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나를 향한 길 위에 서 계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이 끝에서부터 완성해 놓으신 길입니다. 바울은 구원이 ‘
논리적 순서’를 따라 이루어진다고 설명합니다. 소명 → 중생 → 회심 → 믿음 → 칭의 → 수양(양자됨) → 성화 → 견인 → 영화, 이 순서는 시간표가 아니라 관계도입니다. 하나님이 구원을 어떻게 구성하시고, 어떻게 진행하시는지를 보여주는 거룩한 로드맵입니다.

그중에서 “
양자 삼으심”은 특별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법적 신분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종이 아니라 손님도 아니라 잠시 머물다 가는 존재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들의 권리, 딸의 권리, 자녀의 권리를 주셨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사랑한다”는 말보다 훨씬 더 강력한 선언입니다. 사랑은 감정이지만, 양자됨은 법적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
양자됨’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단어는 로마법에서 가져온 개념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존재하지 않던 제도였기에, 바울은 가장 강력한 예를 로마법에서 빌려온 것입니다. 로마 시대에서 양자는 단순히 “데려다 키운다”는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양자가 되면? 양부의 이름을 그대로 이어 받습니다. 양부의 모든 재산을 상속받습니다. 적자보다 더 강력한 상속권을 보장받습니다. 양자에게는 상속을 반드시 실행해야 한다는 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모든 신분과 빚, 기록은 완전히 삭제됩니다. 마치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처럼 말입니다.

바로 이것이 바울이 말하고자 한 “
양자됨”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셨다는 것은 ‘예쁘고 착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신분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시겠다는 뜻입니다. 그 신분은 도중에 상실되지도 않고, 다시 심판을 받지도 않는, 법적으로 보장된 신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이미 최후의 심판을 통과하셨고, 우리는 다시 심판받지 않습니다. 이것이 “
일사부재리” 원칙이 성경적으로 의미하는 바입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을까요? 에베소서 1장 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하사 우리를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
기쁘신 뜻대로’입니다. 하나님은 억지로가 아니라 기쁨으로, 의무가 아니라 사랑으로, 선행을 보고 감동하셔서가 아니라 그분의 마음에서 우러나와 우리를 자녀 삼으셨습니다.

둘째, 목적은 ‘
자녀됨’입니다. 단순히 구원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마음, 영광, 나라를 함께 이어받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 삼으셨다면 우리의 현재 삶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첫째는 나의 가치는 흔들리지 않는다. 세상은 내 외모, 성공, 능력으로 나를 평가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이미 자녀로 확정하셨습니다. 내가 실패했다고 신분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넘어졌다고 하나님의 마음에서 멀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자녀의 신분은 그 어떤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둘째는 고난은 벌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길’이다. 자녀가 된 사람에게 고난은 징벌이 아니라 양육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성숙하게,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마침내 영광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 고난이라는 도구를 사용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했습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롬 8:18) 고난이 내게 닥칠 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고난은 나를 멸하려는 불이 아니라 정금 같은 믿음으로 빚어내는 불입니다.

셋째는 우리는 이미 ‘상속자’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양자로 삼으셨다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어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냥 상징이 아니라 실제이며, 법적 선언이며, 이미 보장된 미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딸입니다. 아버지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돈도, 성공도, 좋은 환경도 아닙니다. “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내 딸이다.” 이 선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바로 그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 안에 우리의 삶, 우리의 미래, 우리의 영광이 모두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결코 우연한 존재가 아닙니다. 당신은 결코 버려진 자가 아닙니다. 당신은 결코 흔들리는 신분의 사람이 아닙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영원히, 변함없이, 견고하게 말입니다. 이 정체성을 붙들고 오늘 하루를 살아가십시오. 자녀의 마음으로, 담대함으로, 기쁨으로, 하나님이 이미 열어두신 길을 따라 걸어가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