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사사기 6:12)
우리는 말씀이 살아 역사하는 현장을 묵상할 때, 종종 그 말씀의 소리(콜)가 담고 있는 깊은 영적 함의를 놓치곤 합니다. 오늘 우리는 사사기 6장의 기드온 이야기에서 “소리”라는 개념이 가지는 복음의 심연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기드온과 함께 시작된 이 여정은 사실 창세기, 출애굽기, 에스겔서, 요엘서, 요한계시록까지 아우르는, 말씀 전체의 맥을 꿰는 놀라운 신학적 연결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임하실 때 나는 소리, 그것은 ‘심판의 소리’입니다. 창세기 3장 8절에서,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그 날에 동산에 거니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숨습니다. 이 소리는 단순한 목소리가 아니라, 히브리어로 ‘콜’이라 불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동반하는 위엄의 소리, 즉 심판의 소리입니다. 이 소리는 죄의 어두움 속에 숨어 있는 자들을 꿰뚫고 찾아오는 거룩의 진동이며, 그 빛 앞에 선 인생은 자신의 벌거벗음을 감추기 위해 무화과 잎으로 가리게 됩니다.
출애굽기 19장에서도 이 소리는 다시 등장합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실 때 여호와께서 불과 연기와 나팔 소리로 강림하십니다. 백성은 그 소리를 듣고 떱니다. 하나님의 소리 앞에서 인간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응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소리는 곧 빛과 어둠, 진리와 거짓, 선과 악을 가르는 심판의 선언이기 때문입니다.
사사기 6장에서 미디안의 압제를 받던 이스라엘 백성은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보내시고, 이어서 여호와의 사자를 보내어 기드온을 부르십니다. 주의 사자가 나타나 말합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타작하던 겁쟁이 기드온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 방식이 얼마나 역설적인지를 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용사를 무너뜨리기 위해 연약한 자를 큰 용사로 부르십니다.
기드온의 전쟁 무기는 칼도 활도 아닌 항아리 깨는 소리, 나팔 부는 소리,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결국 그 소리가 미디안의 진영에 혼돈을 일으키고, 대적은 자기들끼리 서로 죽이며 무너집니다. 이것은 단순한 전쟁이 아니라, 창세기에서부터 이어진 ‘하나님의 소리로 이뤄지는 심판과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흔히 심판을 '형벌'로만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에서의 심판은 ‘형벌’보다는 ‘구별’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빛과 어둠을 나누신 것처럼, 심판은 하나님 나라 백성과 그렇지 않은 자들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심판 선언이며, 그 기준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리고 그 구별이 끝나는 날, 여섯째 날에 하나님은 모든 것을 “심히 좋았더라”고 선언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안식하십니다. 그러므로 심판은 곧 창조의 완성이고, 안식의 시작입니다. 심판 없이 안식은 오지 않습니다.
요엘서와 스바냐서에서는 하나님의 군대처럼 등장하는 메뚜기 떼, 황충, 늣이 나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삼켜버릴 심판의 도구입니다. 그런데 충격적인 것은, 이 메뚜기 떼가 어디에서 활동하는가 하면 하나님의 백성 안이라는 것입니다. 곧, 내 속의 황충, 나를 중심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교만과 자아, ‘나’라는 신을 위해 세상을 움직이려는 종교적 열심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황충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의 나팔을 불며 강림하십니다. 그리고 그 불로써 황무하게 하신 후, 남은 자 안에 새 창조를 이루십니다.
그날, 여호와의 날, ‘루아흐 하 욤’은 공포스러운 날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안식의 날입니다. 자기의 자리를 버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 자들에게는 새로운 창조가 선포되는 날입니다. 주의 날에 임하시는 주님의 소리는 많은 물소리 같고, 나팔 소리 같으며, 그것은 그분이 주시는 마지막 구별의 소리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계1:10) 그 소리는 무서운 심판의 선포이자, 주님의 다시 오심을 알리는 나팔 소리입니다. 그리고 그 주님은 일곱 눈, 일곱 영을 가지신 분으로서 세상의 모든 것을 ‘보시기에’ 판단하시는 분입니다.
성도의 진짜 승리란 무엇인가? 기드온의 300명, 여호와의 소리에 무너진 미디안, 창세기 3장에서의 숨어버린 인간, 요한계시록의 불꽃 같은 눈을 가지신 예수님… 이 모든 메시지가 향하는 곳은 하나입니다.
성도의 승리는 나의 무너짐입니다.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의 소리 앞에서 부서지고, 항아리 깨지듯 부서져 그 안에서 진짜 빛,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날의 소리는 지금도 울리고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 앞에 서서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고백하십시오. "여호와의 소리가 내 자아를 부숴주소서. 내 안의 황충을 몰아내소서. 나팔 소리 따라 하나님의 안식에 이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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