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사기 5장 1~13, 23절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사사기 5장을 읽으며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얻습니다. 하나님은 대적을 치시기 위해 친히 강림하시는 분이시며, 동시에 당신의 백성으로 하여금 그 전쟁에 ‘즐거이 헌신’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 승리에 백성이 동참하도록 하시는 분, 그리고 그 참여조차도 당신의 은혜에서 비롯되었다고 선포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드보라와 바락의 찬양은 단순한 승리의 노래가 아닙니다. 이는 출애굽의 역사처럼, 하나님께서 구원의 주체가 되셔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의 손에서 구출해내신 사건에 대한 예언적 찬송입니다. 이스라엘은 헌신했고, 그러나 그 헌신조차도 ‘하늘의 별’과 ‘기손 강’이 싸우는 가운데 있었던 하나님의 싸움 속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삿 5:2)
‘백성이 헌신했으니, 백성을 칭찬하라’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라 합니다. 이는 백성의 헌신조차도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해졌다는 고백입니다. 사사기 5장에서 반복되는 핵심 주제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헌신하셨기에, 백성도 헌신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메로스는 여호와를 돕지 않았다는 이유로 저주를 받습니다(삿 5:23).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전쟁에 동참하지 않은 자들은 저주받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을 던지게 됩니다.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인데, 왜 우리가 참여하지 않았다고 저주를 받는가?”
그 대답은 명확합니다. 우리의 참여 자체가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헌신이 구원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진짜 구원받은 자는 반드시 헌신하게 되어 있다는 원리입니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기손 강이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삿 5:20~21) 드보라와 바락은 이 전쟁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습니다. 이 전쟁은 이스라엘 백성이 전투에서 발휘한 ‘무기력한 힘’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별들이, 하늘의 권세가 싸웠습니다. 강물이 범람하여 철병거를 무력화시켰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전투력이 아니라, 자연마저 도구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였습니다.
성도의 구원도 이와 같습니다. 철옹성 같고 철병거 같은 내 자아, 내 죄성은 내가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손 강처럼 넘쳐 흐르는 은혜로 그 대적을 무너뜨리십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자리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여호와의 전쟁에 헌신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내 안의 ‘용사’를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대적은, 시스라가 아닙니다. 내 안의 아담, 하나님 없이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며 하나님처럼 되려는 그 자아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영웅’ 되고자 하는 그 야심,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살아가고자 하는 내 자아,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이 치시고자 하는 ‘용사’입니다.
그리고 그 용사는 내가 싸워 죽일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그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진짜 헌신은 “내가 예수 안에서 죽는 것”입니다. 내가 죽는 자리에 참여하는 것, 예수님의 헌신으로 인해 내가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날마다 나를 부인하는 삶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헌신입니다.
드보라와 바락은 ‘즐거이 헌신한 자들’을 찬양하지 않고, 그들이 즐거이 헌신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양은 인간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헌신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것이 진짜 찬양입니다.
창세전부터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언약이, 역사 속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죄 아래 가두신 하나님께서, 구원의 때에 당신의 백성을 꺼내실 때, 그 구원의 이야기 속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찬양의 이유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2)
나는 지금 여호와의 전쟁터에 서 있는가, 아니면 메로스처럼 멀리서 방관하며 ‘중립’이라는 안일한 자리에서 살고 있는가?
내 헌신은 스스로 내미는 의의 표현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헌신에 대한 반응으로 드러나는 자기 부인의 고백인가?
나는 예수님의 십자가 헌신으로 말미암아, 내 안의 자아가 죽어가는 과정을 경험하고 있는가?
오늘도 내 안의 옛 자아를 죽이시기 위해 나를 전쟁터에 세우신 하나님의 손길을 기억하며, 그 손에 맡겨져 ‘즐거이 헌신하는 자’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분의 헌신으로 내가 살아났고, 그분의 열심으로 내 안의 ‘용사’가 죽어가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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