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흔히 “돈은 열심히 일한 만큼 버는 것”이라고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정작 열심히 살아도 늘 부족하고, 일할수록 마음이 메말라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돈을 ‘노동의 대가’로만 보기 때문입니다. 돈은 단순히 일의 보상이 아닙니다. 돈은 ‘존재의 가치’를 반영합니다. 다시 말해, 돈은 내가 세상에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나 자신을 얼마나 귀히 여기는지를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돈이 있다는 것은 ‘자유’를 가졌다는 뜻입니다.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즉 참지 않아도 되고, 억지로 하지 않아도 되며, 진짜 원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 말입니다. 돈이 많아서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한 자유는 ‘통장 잔액’에서 오지 않습니다. 마음속에서 “나는 충분하다”는 확신이 있을 때 시작됩니다.
돈은 마음의 인정에서 흘러옵니다. 지금 당장 손에 돈이 없어도 “나는 이미 풍요롭다”, “나에게는 들어올 길이 열린다”고 믿는 순간부터 흐름이 바뀝니다. 믿음이 현실을 움직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향해 “나는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면, 세상도 우리를 빈손으로 대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이다”라고 인정하면, 세상은 그 믿음에 응답합니다. 돈은 ‘없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있는 것’입니다. 단지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자기 평가가 낮으면 돈이 멀어집니다. 자기 자신을 무가치하게 여기면, 세상도 그 사람을 무가치하게 대합니다. 반대로,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돈이 기꺼이 다가옵니다. 돈은 나를 인정할 줄 아는 사람에게만 머뭅니다. “나는 쓸모없는 사람이다.” “나는 돈 벌 재주가 없다.” “나는 늘 부족하다.” 이런 생각들은 보이지 않는 문을 닫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고백해 보세요. “나는 존재만으로 이미 소중하다.”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는 풍요로움의 통로다.” 그때부터 돈은 ‘일의 대가’가 아니라, 존재에 대한 응답으로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세상에는 ‘성과급’이 있고, 또 ‘존재급’이 있습니다. 성과급은 일을 잘해서 받는 보상입니다. 하지만 존재급은 그 사람이 거기 있기 때문에 주어지는 축복입니다. 아기의 미소에 부모가 기꺼이 지갑을 여는 이유는, 아기가 일을 해서가 아닙니다. 그 존재 자체가 귀하고 사랑스럽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도 같습니다. 우리가 일을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부자일수록 ‘존재급’의 가치를 압니다. 그들은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풍요로울 자격이 있다.” “나는 이미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는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 그 믿음이 실제가 됩니다.
돈은 세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나 자신과의 관계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지가 돈의 흐름을 결정합니다. 돈을 쫓기보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세요. 노력보다, 나의 가치를 먼저 받아들이세요. 그때 ‘일의 대가’가 아닌 ‘존재의 복’이 흘러들기 시작합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 하나님 안에서 이미 충분히 가치 있고, 풍요로운 존재임을 깨닫는 순간, 돈은 나를 따라옵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돈은 나의 삶을 섬기는 도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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