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언젠가 모두 ‘마지막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죽음을 외면하는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제대로 살지 못하는 삶’이 되곤 합니다. 호스피스 의사 정양수 박사는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결국 잘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의학적 조언이 아니라, 인생 전체를 꿰뚫는 지혜입니다.
호스피스는 죽음이 아닌 ‘삶의 마지막’에 대한 배려입니다. ‘호스피스’라는 단어는 원래 중세 순례자들이 길 위에서 잠시 쉬어가던 ‘쉼터’를 의미합니다. 오늘날의 호스피스 병동은, 인생의 길을 다 걸어온 사람들이 마지막 여정을 평안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돕는 곳입니다. 연명치료가 ‘삶을 붙잡는 기술’이라면, 호스피스는 ‘삶을 내려놓는 기술’을 가르쳐줍니다. 인공호흡기나 각종 기계 장치가 아닌, 사랑과 이해, 그리고 존중으로 환자를 맞이하는 곳입니다. 삶의 끝자락에서도 인간의 품위를 지켜주는 것이 바로 호스피스의 본질입니다.
정양수 박사는 아버지와 장인어른의 임종을 지켜보며 의사로서 깊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아버지는 암 선고 후 편히 지낼 공간을 찾다 호스피스 병실에 모셨지만, 끝내 불편한 환경 속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반면 장인어른은 끝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으셨지만, 결국 가족과 인사도 나누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그는 두 죽음을 지켜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죽음을 맞이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살려는 의지’보다 ‘평안히 떠날 수 있는 용기’가 아닐까." 죽음의 순간은 단순히 삶의 끝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드러내는 마지막 고백입니다.
호스피스 병동의 의료진들은 환자들에게 꼭 묻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 당신이 꼭 하고 싶은 일이 무엇입니까?” 어떤 이는 미뤄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말하고, 어떤 이는 고향의 바다를 다시 보고 싶다고 합니다. 한 80세 폐암 환자는 “바둑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혼한 부인을 만나게 했지만, 정작 환자는 큰 감흥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바둑 친구를 만나자 아이처럼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그때 팀은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스스로도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마음의 진짜 소원을 찾아주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돌봄이다.”
정양수 박사는 말합니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오늘을 계획하는 일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10년 후의 내 인생을 그려보라’고 조언합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그때까지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일까? 그것을 구체적으로 써보고, 하나씩 실천해보라고 합니다.
이렇게 미리 인생을 그려두면, 막상 그와 비슷한 기회가 다가왔을 때 ‘망설임 없이 올라탈 수 있다’고 합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보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며 인생을 미리 계획한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삶을 더 뜨겁게 살아내기 위한 행위입니다.
어느 날, 한 환자가 “막걸리 한 잔이 소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콧줄로 영양을 공급받는 상태였습니다. 의료진은 며칠간 훈련과 연습을 거쳐 콧줄을 제거했고, 의사는 직접 막걸리를 사와 작은 잔에 따라드렸습니다.
그 한 모금의 막걸리를 마신 환자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얼굴로 웃었습니다. 그 모습에 의사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 한 잔이, 그분의 인생 전체를 위로해준 순간이었습니다." 죽음을 앞둔 사람에게도 여전히 ‘삶의 맛’은 존재합니다. 그리고 그 맛은 거창한 성공이나 재산이 아니라, ‘작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자유’에서 옵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은 가장 아름답게 살아갑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삶을 더 사랑할 줄 압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사람은 오늘 하루를 헛되이 보내지 않습니다. “언젠가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 사람만이, 진심으로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는 내일 일을 자랑하지 말라. 하루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날는지 네가 알 수 없음이니라."(잠언 27:1) 그러므로 오늘, ‘10년 후의 나’를 그려보십시오.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어떤 사랑을 나누고 싶은지, 어떤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싶은지 말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우리의 죽음은 두려움이 아닌 감사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죽음을 준비하는 일은 곧, 하루를 성실히 살아내는 예배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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