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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자기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11. 16.

우리는 종종 ‘잘 살기 위해’ 배우고, 듣고, 따라갑니다. 부모가 가르친 말,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 학교에서 배운 정답들… 어느새 우리는 모든 기준을 ‘밖에서’ 구해오고, 그 기준을 충실히 수행하는 사람을 훌륭하다고 여기는 사회 안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진석 교수는 말합니다. “
당신은 기준의 수행자가 아니라, 기준의 창조자가 되어야 한다.” 이 말은 단순한 자기계발적 구호가 아니라, 삶의 본질을 향한 질문입니다. 나는 지금 누구의 기준으로 살고 있는가? 내 삶의 주인은 정말 나인가? 창조는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그것도 “틀렸다”라고 말하는 질문이 아니라, “굳이 꼭 그래야 하나?”라고 묻는, 엉뚱하고 비틀린 질문에서 나옵니다.

누군가가 만들어 둔 기준을 그대로 따르는 사람은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기준의 관리자입니다. 그 기준이 옳은지, 내 삶에 맞는지, 나는 어떤 삶을 원하는지조차 묻지 않습니다. 최 교수는 B형 간염 백신의 사례를 들며 말합니다. 세계 최초의 백신이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졌음에도, “
기준이 없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기준은 원래 누군가가 처음 만들어야만 존재하는 것인데, 우리는 이미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기준이 없으면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합니다. 기준의 수행자는 안전하지만, 결코 주인이 아닙니다. 기준의 창조자는 위험하지만, 진짜 삶의 주인이 됩니다.

장자의 이야기에서 수레바퀴 장인 윤편이 왕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
성인의 글이란 죽은 자의 찌꺼기일 뿐입니다.” 이 말은 성인(聖人)을 무시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글과 이론은 그들이 살아 있던 순간의 감각과 사건의 흔적일 뿐입니다. 그 감각은 말과 글로 완전히 전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감각을 흉내 내며 배우지만, 그 흉내는 결코 그들이 경험한 사건의 생생함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배운 모든 지식, 이론, 관념은 누군가의 순간적 깨달음이 굳어져 딱딱해진 조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인의 글을 읽어 경외하되, 그 글 속에 갇히지 않아야 합니다. 진리는 현재의 순간에만 살아 있고, 과거의 진리는 시간이 지나면 모두 찌꺼기가 됩니다.

다이어트 이론을 많이 안다고 해서 살이 빠지는 것이 아니듯, 혁신을 이야기한다고 해서 혁신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시대의 가장 큰 함정은 말과 실천을 혼동하는 착각입니다. 우리는 성인의 글을 읽고, 위대한 사상을 외우며, 그것을 따르는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착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인이 남겨 놓은 ‘
결과물’을 흉내 내는 것일 뿐, 성인이 실제로 살아냈던 사건을 경험한 것은 아닙니다.

사람들이 혁신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직접 움직이는 ‘
주체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진짜 삶의 변화는 언제나 나로부터 시작됩니다. 세상이 바뀌지 않는 이유는 정의로운 사상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정작 자기 자신은 바꾸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함석헌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
혁명을 하는 사람들이 혁명되지 않은 채 혁명을 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혁명이 먼저 일어나야 합니다.

장자는 화려한 소로 살다 죽임을 당하느니, 진흙탕 속에서 자유롭게 살아가겠다고 말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원하는 삶의 방식을 따르겠다는 선언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
우리’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기준에 목을 매지만, 삶은 결국 내가 나를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움직입니다.

우리는 책을 읽고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그 목적은 결국 내가 책을 쓰기 위해서이고 언젠가는 내가 말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듣는 데 익숙해져 말을 잃는 사람이 됩니다. 배우는 데 익숙해져 표현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최 교수는 말합니다. “
삶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이다.

인생을 움직이는 동력은 지식을 축적하는 데 있지 않으며, 내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는 데 있습니다. 배우기와 표현하기 사이, 듣기와 말하기 사이 그 모호한 경계 위에서 사람은 야성을 얻고, 살아 있는 존재가 됩니다.

외부의 기준은 언제나 우리를 작아지게 만듭니다. 비교는 왜곡된 거울처럼 우리의 존엄을 흐리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가 외부의 기준을 벗고 나를 바라보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생각보다 훨씬 강하고, 훨씬 자유롭고, 훨씬 존엄한 존재입니다.

최 교수는 말합니다. 죽기 전에 하지 말아야 할 두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충고하지 않기이고 둘째는 남의 충고를 듣지 않기입니다. 그리고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할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나 자신에 대한 무한 신뢰이며, 둘째는 나 자신에 대한 무한 사랑입니다.

이 말은 외부 세계에 무관심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타인의 기준보다 내 삶을 살아내는 데 집중하라는 의미입니다. 나에게 무한히 사랑을 주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뿐이며, 나를 가장 멀리까지 데려가는 힘도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신뢰입니다.

내 삶의 기준은 어디에서 오고 있는가? 오늘도 우리는 수많은 기준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옳고 그름, 성공과 실패, 정상과 비정상… 그 모든 기준이 과연 나의 것인가? 아침에 눈을 뜨며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기준의 수행자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기준의 창조자로 살고 있는가?

삶은 정답을 찾는 시험지가 아닙니다. 삶은 내 안에서 끊임없이 쏟아 오르는 욕망과 감각을 세상이라는 무대 위에 표현하는 존재의 예술입니다. 그리고 그 예술의 작가, 그 삶의 주인은 언제나 나 자신이어야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