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친구의 유해를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운다. 내가 아는 친구는 오로지 하나, 여기에 그가 누워 있다."
위의 인용문은 영국의 시인 바이런 경의 반려견 보츠와인의 무덤가에 세워진 묘비에 적힌 글입니다. 바이런은 "아름답지만 허영심은 없고, 힘이 있지만 오만함이 없으며, 용감하지만 포악함이 없고, 인간의 모든 미덕을 갖추었으나 그 악덕은 없다"라고 자신의 개를 기억했습니다.
여러 면에서 애완동물과 아이들은 많이 닮았습니다. 그들이 가진 치유의 힘과 순수성은 때때로 어른들에게 여러 가지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동물과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집에는 항상 동물과 어린이들로 북적거립니다.
어른인 나는 내 또래의 어른들과 간혹 다툼이 생길 때 그들도 한때는 어린이였다는 것을 기억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러면 한결 마음이 편안해지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나이와 개체에 상관없이 서로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 이해해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는 종종 인간관계에서 기대하고, 실망하고, 상처받는 일을 반복합니다. 때로는 '사랑'이라는 말조차 계산의 장부 위에서 휘청거릴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바이런이 묘사한 그의 반려견은, 어떤 조건도 계산도 없이 다만 '존재'로서 사랑받고 사랑한 친구였습니다.
동물과 어린아이를 떠올릴 때, 우리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자연스럽게 연상합니다. 그들의 시선에는 판단이 없습니다. 누군가를 돈이나 외모, 사회적 지위로 평가하지 않습니다. 단지 함께 있고, 웃어주고, 기다려주며 마음을 표현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많은 이들이 삶의 상처 속에서도 동물이나 어린아이를 통해 다시금 사랑을 배웁니다.
이런 경험은 우리 안에 본래 있었던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죽지 않았음을 알려줍니다. 조건 없이 사랑한다는 것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모습일지 모릅니다. 사랑은 주는 자의 순전함에 달린 것이지, 받는 자의 자격에 달린 것이 아닙니다.
삶의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상처 주며 살아갑니다. 다툼과 갈등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미워하거나 힘들어하는 사람도 한때는 눈망울 맑은 아이였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다시 이해의 문으로 다가갈 수 있습니다.
나도 누군가의 실수로 인해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고, 실수한 경험도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성장의 여정 속에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타인을 향한 관용과 이해는 결국 나 자신을 위한 길이기도 합니다.
'네가 나를 보살폈잖아!' 1993년, 미국 뉴욕의 한 보육원에서 일어난 실화입니다. 보육원에서 자란 네 살짜리 아이 한 명이 신생아 동생을 따뜻하게 품에 안고 잠들어 있었습니다. 새로 들어온 갓난아기는 밤마다 울며 잠들지 못했고, 직원들은 당황해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기가 밤에 울지 않게 되었고, 직원들은 이상하게 여겨 몰래 관찰했습니다.
네 살짜리 아이가 매일 밤 아기에게 다가가 이렇게 속삭이며 안아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괜찮아, 나도 너처럼 울었단다. 누군가 와서 나를 안아줬어. 이제는 내가 너를 안아줄게.”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이는 '받은 사랑'을 기억했고, 그대로 '주는 사랑'으로 돌려주었습니다. 이 사랑은 조건 없고 계산 없는, 순전한 나눔이었습니다.
사랑은 반드시 거창하거나 감동적인 일이 아니어도 됩니다. 오늘, 곁에 있는 사람에게 한마디의 친절한 말, 작은 인내, 그리고 판단하지 않는 태도만으로도 우리는 조건 없는 사랑을 살아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셨습니다. 죄 많고 허물 많은 우리를 조건 없이 받아주시고, 십자가를 통해 그 사랑을 증명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랑을 받았기에, 우리도 서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 (마태복음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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