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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6. 2. 7.

삶이 뜻대로 흘러갈 때보다, 뜻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훨씬 많습니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 믿었던 사람이 등을 돌렸을 때, 분명 최선을 다했는데도 “왜 여기까지밖에 안 왔지?”라는 생각이 들 때 말입니다. 그럴 때 이 문장을 마음속으로 천천히 대되여 보세요.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다.” 이 문장은 상황을 미화하지 않습니다. 괜찮다고 억지로 말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도망치지 않게 해줍니다.

몇 년 전, 한 지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오랫동안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졌습니다. 그날 저녁, 회사 엘리베이터 앞에서 혼자 서 있다가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고 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공간이었지만, 그조차 버거웠습니다. “내가 왜 여기 있지?” “이 나이에 이 결과라니.” 그때 누군가 위로하듯 이런 말을 해줬다고 합니다. “지금 네가 서 있는 이 자리도, 네 인생의 일부야. 이 장면도 너한테 필요했을 거야.” 처음엔 위로 같지도 않았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며칠 뒤,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내가 실패한 사람이어서 여기 있는 게 아니라 배우기 위해 여기 와 있구나." 그 경험 이후 그는 방향을 바꿨고, 그 실패가 아니었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과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때의 엘리베이터 앞은, 그가 머물고 싶지 않았지만 반드시 지나야 했던 장소였습니다.

SNS를 열면 늘 이런 생각이 듭니다. “왜 나는 저기까지 못 갔을까?” “왜 나만 제자리인 것 같지?” 하지만 이 문장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비교의 기준이 바뀝니다. 너는 너의 길을 가고 있고, 나는 나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마치 산을 오르는 두 사람이 다른 등산로를 선택한 것처럼 말입니다. 어떤 길은 빠르지만 가파르고, 어떤 길은 느리지만 오래 걷게 만듭니다. 중요한 건 누가 먼저 도착했느냐가 아니라, 지금 내가 내 길 위에 서 있느냐입니다.

우리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합니다.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 말은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나는 이렇게 서툴지?” 하지만 지금의 내가 완벽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아직 배우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아이에게 처음 자전거를 태울 때를 떠올려 보세요.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무릎이 까집니다. 그걸 보고 “왜 이렇게 못 타?”라고 말하는 부모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기 자신에게만 그렇게 잔인할까요. 지금의 버벅거림, 실수, 엉성함조차도 통과 중인 과정일 뿐입니다.

어떤 경험은 정말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관계의 실패, 깊은 상처, 부끄러운 기억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경험들을 딛고 일어난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타인의 아픔을 함부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을 쉽게 포기하지 않습니다. 인생을 단순한 성공과 실패로 나누지 않습니다. 끔찍한 경험은 우리를 부서뜨리기도 하지만, 부서진 자리에 깊이를 남깁니다. 그 깊이가 사람을 만듭니다.

힘겨울 때는 복잡한 깨달음이 필요 없습니다. 긴 설명도, 대단한 결심도 필요 없습니다. 그냥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삶이 항상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는 않아. 그래도 내가 있어야 할 곳은 바로 여기야.” 이 문장은 상황을 바꾸지는 않지만, 나를 그 상황 안에서 살게 해줍니다. 도망치지 않게 하고, 자기 혐오로 빠지지 않게 하고, 다시 한 발 내딛게 만듭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속도로, 다른 길을 걷고 있습니다.

지금의 나는 미완성이고, 서툴고,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도 괜찮습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이, 바로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니까요. 그리고 그 자리를 통과한 뒤, 우리는 조금 더 단단해진 사람으로
다음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