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느 누구도 혼자서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부당함이 어디에서 일어나든, 그것은 어디에서든 정의에 대한 위협입니다.”
우리는 흔히 자유를 개인의 문제로 생각합니다. 내가 차별받지 않으면, 내가 억압당하지 않으면, 나는 이미 충분히 자유롭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조금만 주변을 둘러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자유롭다고 느끼는 이 사회에서 누군가는 여전히 숨을 죽이고 살아간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피부색 때문에, 어떤 이는 성별 때문에, 어떤 이는 사랑하는 방식 때문에 거리에서 시선을 견뎌야 합니다. 어떤 아이는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가난을 물려받고, 어떤 청소년은 자신이 누구인지 말하는 순간 조롱과 폭력을 감수해야 합니다. 총기 사건의 뉴스가 반복되고, 혐오 발언은 농담처럼 소비됩니다. 괴롭힘과 소외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가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런 장면들을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하며 지나칩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일상이 되는 사람에게 그것은 사건이 아니라 삶 전체를 규정하는 조건입니다. 진정한 해방은 여기서 시작됩니다. 나만 괜찮으면 되는 자유는 완전한 자유가 아닙니다. 누군가가 억압당한 채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 억압은 언젠가 다른 얼굴을 하고 우리 모두에게 돌아옵니다. 차별을 묵인하는 사회는 결국 불신과 증오를 키우고, 그 증오는 공동체 전체를 병들게 합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특권’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특권은 꼭 부유함이나 유명함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다수자라는 이유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삶, 안전하게 길을 걸을 수 있는 몸, 존재 자체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 역시 특권입니다. 문제는 그 특권을 어디에 쓰느냐입니다. 침묵을 유지하는 데 쓸 수도 있고, 약자를 향한 무자비한 폭력과 차별에 맞서는 데 쓸 수도 있습니다.
예컨대 직장에서 성차별적인 발언이 나왔을 때, 피해자가 직접 항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때 상대적으로 안전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그 말은 부적절합니다”라고 말하는 것, 그것이 특권의 올바른 사용입니다.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보며 “괜히 나까지 엮이고 싶지 않다”고 외면하는 대신, 어른이 제도와 책임을 요구하는 것, 그것 또한 작은 해방의 시작입니다.
해방은 거창한 영웅의 행동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모두의 목소리가 중요합니다. 말하는 것, 기록하는 것, 연대하는 것, 그리고 투표하는 것까지, 우리의 자산이 크든 작든, 우리의 한 표 한 표는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갈 것인지를 결정하는 실제적인 힘입니다. 그 권리를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다른 누군가에게 우리의 미래를 맡겨버리게 됩니다.
무관심은 중립이 아닙니다. 불평등 앞에서의 침묵은 현 상태를 유지하겠다는 선택입니다. 증오가 확산될 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은 그 증오가 자랄 공간을 내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사회 정의는 일부의 싸움이 아니라 모두의 책임입니다. 모두가 해방되어야 진정한 해방이 찾아옵니다.
누군가의 자유가 대가를 치러야만 유지되는 사회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서로의 존엄을 지켜주는 사회에서만 개인의 자유도 안전해집니다. 우리가 오늘 할 수 있는 작은 선택인 말하기, 거부하기, 연대하기, 투표하기, 그 하나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조금 덜 두렵게 만듭니다.
그 길은 느리고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길만이 우리가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리고 그 여정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자유는 모두의 것이라고 말입니다.
“자유는 나에게서 시작되지만, 결코 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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