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창세기 2:1~3)
창세기 2장 1~3절은 하나님의 창조가 마무리되고, 그 모든 지으신 일에서 안식하신 장면을 보여줍니다. 일곱째 날,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그 날을 거룩하게 구별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날에는 앞의 여섯 날과 달리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후렴구가 없습니다. 왜일까요? 단순한 문학적 생략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매우 의도적인 성경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영적 신호입니다.
창세기의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구절은 단지 하루의 시간적 시작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역사적 흐름, 곧 ‘구속의 리듬’을 상징합니다. 저녁은 빛이 이지러지고, 희미해지는 때입니다. 아직 캄캄한 밤은 아니지만 어둠이 가까이 온 시간입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에덴 이후 이 세상은 저녁에서 밤으로, 그리고 아침을 향해 가는 여정을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첫 여섯 날은 모두 ‘저녁’으로 시작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어둠과 혼돈에서 시작되어 점점 빛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창조는 단순한 질서의 수립이 아니라, 어둠에서 빛으로, 혼돈에서 구속으로, 불완전함에서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 자체인 것입니다.
일곱째 날에는 왜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이 없을까요? 그 이유는 명확합니다. 일곱째 날은 영원한 안식의 상징이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밤이 없고, 저녁이 없습니다.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일곱째 날은 창조의 완성 그 자체이자,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의 모형입니다. 계시록은 분명히 말합니다. “다시는 밤이 없으며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빛이 되심이라”(계 22:5).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피곤하셔서 쉬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사 40:28).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가 완성되고, 하나님이 만드신 세계 속에서 당신의 능력과 성품과 영광이 온전히 드러나며,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순종하는 상태에 이를 때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곳에 충만히 거하십니다.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아무 거리도 없고, 모든 창조 세계가 하나님 안에서 존재의 의미를 회복하는 상태, 그것이 참된 안식입니다.
인간은 창조의 마지막 날,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고, 그 다음 날인 일곱째 날부터 안식을 누리도록 초대받았습니다. 인간은 무언가 일을 성취하고 대가로 안식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창조의 처음부터 인간은 안식의 존재로 불림받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원래 목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사는 것, 그것이 인간의 본래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타락 이후 인간은 그 안식을 스스로 떠났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며 전적으로 의뢰하는 상태, 그 평안을 버리고, 자기 힘으로 무언가를 쌓아 올려 스스로 안식을 만들어 보려 한 것입니다. 문명을 세우고, 담을 쌓고, 경쟁하며, 뺏고, 지키며 살아가는 방식으로 말입니다. 참된 안식을 잃어버린 인간은 끝없이 불안한 존재가 되었고, 그 불안은 욕망과 죄악의 형태로 표출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잃어버린 안식을 회복하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는 둘째 아담으로서, 에덴 동산에서 실패한 첫 번째 시험, 곧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순종을 십자가에서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포하심으로 새로운 창조를 완성하셨습니다. 구원의 6일이 끝난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무덤 속에서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거듭나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고(고전 3:16),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안식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이미 이루어진” 안식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안식 사이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처소로 계속해서 지어져 가고 있으며(엡 2:22), 마침내 주께서 완성하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그것은 곧 ‘안식의 삶’을 미리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배의 삶, 순종의 삶, 의뢰의 삶, 그리고 사랑의 삶입니다.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며,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 됨을 이루며,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는 삶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안식’입니다.
참된 안식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깊은 안식은 하나님의 뜻에 가장 깊이 순종할 때 주어지는 것입니다. 육체는 피곤해도 마음은 기쁘고 자유로운 상태, 그곳이 참된 안식입니다. 성도의 삶은 그 안식을 향해 가는 삶입니다. 저녁에서 아침으로, 아침에서 정오로 나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더 이상 저녁도, 밤도 없는 하나님의 나라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일곱째 날, 안식의 날에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말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날은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날,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진 날, 그 날은 영원한 낮입니다. 하나님은 그날에 우리를 부르십니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을 안식으로 잘 살아내십시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하나님의 처소로 지어져 가십시오. 우리는 이미 그 빛의 나라를 향해 걷고 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그 날이 완전히 이를 것입니다. 그 날, 우리는 마침내 진짜 안식을 얻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안식은 시작되었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완성될 것입니다.” 저녁이 지나고, 아침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낮이 올 것입니다. 그 영원한 낮이, 우리의 본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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