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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 속으로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by HappyPeople IN JESUS 2025. 7. 5.

사사기 6장 1~18절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사사기 6:12)


이스라엘의 타락은 반복됩니다. 출애굽 이후의 이스라엘은 마치 돌고 도는 바퀴처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다가도 어느 순간 그 은혜를 잊고, 눈에 보이는 우상들과 동화되어 버립니다.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악을 행하고, 그 대가로 대적들의 손에 붙여지며 고통 속에서 신음하게 됩니다. 오늘 사사기 6장은 그 반복된 사이클의 또 하나의 단면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 반복 속에 담긴 하나님의 깊고도 신비한 섭리와 구속의 원리가 드러나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기드온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사람입니다. 드라마틱한 전쟁 이야기, 숫자의 기적, 300명의 소수 정예 용사. 성경의 수많은 이야기들 중에서도 가장 영웅적으로 포장되기 쉬운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은 이 “
영웅 서사”의 뿌리를 단단히 잘라내십니다. 영웅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사람은 그분 앞에서 철저히 무력한 그릇일 뿐임을 밝히 드러내십니다. 그 첫 장면이 바로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던 기드온"이라는 의외의 그림입니다.

타작은 본래 바람이 불어오는 넓은 마당에서 하는 것입니다. 곡식을 땅에 쏟아두고 타작을 하면, 바람이 쭉정이를 날려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타작을 포도주 틀 안에서 하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들키면 다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들판에서 떳떳하게 타작하지 못하고, 포도주 틀에 숨듯 들어가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작업을 조용히 하고 있는 기드온은 생존을 위한 궁색한 몸부림이자, 당시 이스라엘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숨은 자, 움츠려 있는 자에게 “
큰 용사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아이러니입니다. 인간은 힘 있는 자를 용사라 부르지만, 하나님은 당신 앞에 철저히 무력한 자를 참된 용사로 부르십니다. 기드온이 큰 용사인 이유는 그가 무기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무기 없음, 곧 무력함을 인식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두려워했고, 도망쳤고, 밀을 감추어 타작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용사로 부르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용사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부르실 때 그의 강함을 보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강함을 무너뜨리십니다. 기드온에게서 그 시작이 일어났습니다. 기드온은 말합니다.
"나는 가장 약한 지파의 사람이며, 내 아비 집에서도 제일 작은 자입니다." 그 말 속에는 두 가지 진실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현실의 객관적인 무력함이요, 다른 하나는 신앙적 자각이 부재한 자기 연민입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무력함 속으로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하나님의 전쟁 전략의 전부입니다. 기드온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군사도, 무기력한 민족도, 환경도, 상황도, 자존감조차도 없습니다. 그런데 오직 하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바로 이 한마디가 모든 것을 바꿔놓습니다. 사사기의 진짜 용사는 기드온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기드온은 그 하나님의 용사됨에 철저히 의존하는 빈 그릇이 됩니다.

우리는 여기서 사사기의 구조를 다시 보아야 합니다. 사사기에서 반복되는 ‘
범죄 - 징계 - 부르짖음 - 구원’의 순환 고리는 인간이 교훈을 받아 회개하며 점점 나아진다는 윤리적 도식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패역함이 고정불변이며, 인간은 절대 스스로 변화할 수 없는 존재임을 드러내기 위한 하나님의 "폭로의 서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개를 기다리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이스라엘의 회개조차도 진정한 의미에서는 자기중심적 안위를 위한 절규일 뿐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회개를 통해 감동받으시거나 마음을 바꾸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회개의 허상을 폭로하십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그분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건져내십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사자를 향해 대듭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그는 고난의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는 신실한 신자가 아니라, 원망하는 백성의 전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가서 이 네 힘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여기서 말하는 '네 힘'은 기드온의 힘이 아니라, 그 무력함 속에서 일하실 하나님의 힘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신 ‘큰 용사’는 어떤 능력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담을 그릇’으로서의 칭호인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기드온을 완전히 비우십니다. 처음 3만 2천 명이 모였을 때도, 이미 상대가 되지 않지만, 하나님은 그마저도 줄이십니다. 두려운 자는 돌아가게 하고, 물 마시는 방식 하나로 300명만 남기십니다. 사람들은 그 300명이 특별히 용맹한 자들이라고 말하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해석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강조하는 것은 철저한 약함입니다. 기드온은 말 그대로 ‘
항아리와 횃불’밖에 없는 자들을 이끌고 전쟁터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13만 5천 명을 무너뜨리십니다.

그 전쟁은 인간의 용맹으로 이겨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혼자 하신 전쟁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무장을 해제시킨 뒤, 비워진 그릇을 사용하십니다. 기드온은 하나님께 붙들린 도구였습니다. 그래서 그가 ‘
큰 용사’였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용사는 자기 능력을 자랑하는 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며 항복한 자를 당신의 큰 용사로 부르십니다. 우리도 포도주 틀 안에서 밀을 타작하는 기드온처럼 초라할지 모릅니다. 우리의 신앙은 두려움에 가득 차 있고, 세상의 압박 앞에 움츠러들며, 하나님의 뜻보다 눈앞의 생존을 더 의식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진정한 신자의 삶은,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던 그 숨어 있는 자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일어나, 세상의 용사됨을 허무는 전쟁의 그릇으로 쓰임 받는 삶입니다. 그것은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진짜 용사이신 하나님께서 싸우시는 전쟁 속에 참여한 은혜 받은 인생입니다.

바라건대, 우리의 무기 없음이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일하심을 담을 수 있는 비움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하나님 한 분이면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하며, 하나님의 전쟁터로 나아가는 믿음의 순종자들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